慈光/이기영 2005. 11. 5. 17:40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 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 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 간다

 

<추일 서정(秋日序情)/김광균(金光均) >

 

 

* * *

 

가을에는 편지를 써야겠습니다.

시인이 노래하는 망명정부의 지폐에다

편지를 써야겠습니다.

 

차곡차곡 씌여진 편지에는

우정을 노래하고

사랑을 노래하고

서정을 노래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