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108사찰순례-미황사
제 2 회 108성지순례 미황사 - 1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
달마산 기슭에 자리잡은 미황사는 우리 나라 육지 가장 남쪽에 있는 절이다.
미황사 사적비에 따르면 통일신라 경덕왕 8년(749)에 처음 지었다고 한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조선 선조 31년(1598)에 다시 지었고,
영조 30년(1754)에 수리하였다고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이다
<미황사사적비>에 보면 절의 창건과 관련한 다음과 같은 연기 설화가 전한다.
신라 경덕왕 8년(749) 홀연히 한 석선(石船)이 달마산 아래 사자포구(獅子浦口)에 와 닿았다.
배 안에서 하늘의 음악과 범패 소리가 들리므로 한 어부가 살피려 다가갔으나
그 때마다 번번이 배가 멀어져 갔다.
이 소식을 들은 의조화상(義照和尙)이 장운(張雲)·장선(張善) 두 사미와 더불어 촌주(村主)인
우감(于甘) 및 제자 100인과 함께 목욕재계하고 정성껏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비로소 석선이 해안에 닿았는데, 그 곳에는 주조한 금인(金人)이 노를 잡고 서 있었다.
그리고 배 안을 살피니 《화엄경》 80권, 《법화경》 7권, 비로자나·문수보살 및 40성중(聖衆),
16나한과 탱화 등이 있고, 또 금환(金環)과 흑석(黑石)이 각 한 개씩 있었다.
향도들이 경을 해안에 내려놓고 봉안할 장소를 의논할 때 흑석이 저절로 벌어지며
그 안에서 검은 소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문득 커졌다.
이날 밤 의조화상이 꿈을 꾸었는데 금인(金人)이 말하기를
“나는 본래 우전국(優塡國, 인도) 왕으로서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경상(經像) 모실 곳을
구하고 있는데, 이곳에 이르러 산 정상을 바라보니 1만불이 나타나므로 여기에 온 것이다.
마땅히 소에 경을 싣고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는 곳에 경(經)을 봉안하라”고 일렀다.
이에 의조화상이 소에 경을 싣고 가는데 소가 가다 처음에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산골짜기에
이르러 다시 누우며 ‘미(美)’하고 크게 울며 죽어 버렸다.소가 처음 누웠던 곳에 사찰을 창건하니
곧 통교사(通敎寺)요,
뒤에 누워 죽은 골짜기에는 미황사를 짓고 경과 상을 봉안했다.
미황사의 ‘미’는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취한 것이고
‘황’은 금인(金人)의 황홀한 색을 취한 것이다.
이러한 창건 설화는 곧 불교의 남방전래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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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대웅전은 보물 947호로서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주춧돌은 앞면 4개와 옆면 2개를 특이하게 연꽃무늬에 자라, 게 따위를 조각한 돌을 사용하였으며
나머지는 자연석을 썼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형식인데 가운데에
불교어인 ‘범(梵)’를 선명하게 새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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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구품인中 중품하생) 중앙 석가모니불(오른손 항마촉지인) 약사여래불
미황사주차장 도착
500여명이 미황사를 향하여...
자하루 紫霞樓
미황사 주지스님
참회, 정진기도 발원
나를 깨우는 108배
금강경 독송
미황사 뒤편에 병충처럼 둘러선 달마산은 그 빼어난 아름다움 때문에 남도의 금강산이라고도 불린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선을 전하고, 해동의 달마산에 늘 머물어 있다고 하여 달마산이라 이름지어졌다.
고려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송나라의 높은 관리들이 찾아와 달마산을 찬탄하고 예경하였다고 전한다
대웅전 주춧돌
석등(무슨 이유로 이렇게 많은 돌을 올려 놨을까요?..)
응진당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신통력이 뛰어난 16분의 아라한들을 모신 전각이다.
응진(應眞)은 참다운 존재의 실상을 환히 깨닫고 해탈에 이른 이들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아라한"의 한자어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대웅전과 함께 여러 차례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석가모니불
명부전
응진당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전경
부도
범종각
출처 : 인천불교회관
작성 : 해탈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