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철강이야기/2연개소문의야망

12 덴무천황 시대의 동전 부본전

慈光/이기영 2013. 7. 20. 15:50

 

 

[이영희 교수의 고대철강사]



(12)한·일 고대왕조의 진상 - 철강 기술 교류를 중심으로



‘해 돋는 데와 가장 가까운 나라’의 뜻으로,
서기 670년 나라 이름을 ‘일본(日本)’이라 새로 정한 왜(倭)는,
‘부상(扶桑)‘부상국(扶桑國)’을 일본의 또 하나의 이름으로 삼아 왔다.




▶ 7세기 후반 사용됐던 일본 동전 ‘부본전(富本錢)’.
당시 수도였던 나라(奈良)현 아스카(明日香)촌 연못에서 1999년 1월 출토됐다.



덴무천황 시대의 동전 ‘부본전’<富本錢>


우리나라와 일본의 셈씨 ①



우리나라의 셈씨(수사·數詞)는 하나·둘·셋·넷… 으로 시작하고,
일본의 경우는 히·후·미·요…(ひ·ふ·み·よ…)로 시작한다.
겉보기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 두 나라의 셈씨가 옛날에는 우리나라의 일부 낱말과 비슷했다고 하면,
억지주장이라고 핀잔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찬찬히 들어주기 바란다.



일본 수사는 고구려 언어 영향


고대 우리나라에는 신라·고구려·백제 세 나라가 서로 세력을 겨루고 있었다.
생활풍습은 물론 말도 달랐다.


가령 ‘물’만 해도
신라에서는 ‘몰’이라 했는가 하면,
고구려에서는 ‘밀’ 또는 ‘미’라 불렀고,
백제에서는 ‘미’, ‘매’라 했다.


고구려말과 백제말은 흡사했다.
백제는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온 나라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셈씨는 신라 계통의 말에서 유래된 것이고,
일본이 쓰고 있는 셈씨는 고구려 계통 낱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일본은 일찍이 우리 삼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동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탓으로
일본은 신라의 영향을 가장 먼저, 가장 일찍부터 받았지만,
4~5세기 이후의 일본은 백제와 고구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백제를 통해 불교를 받아들여,
종교·예술·식생활문화의 경우 백제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일본이 고구려 언어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은 7세기 이후의 일로 보여진다.

벼농사가 잘되고,
사철(砂鐵)과 땔감 나무가 풍부한 ‘제철천국(製鐵天國)’ 일본을 탐낸
고구려 권력층의 잇따른 진출이 계기가 됐다.



연개소문이 일본에 눈독 들이기 전,
그의 외가 집안인 ‘대(大)씨’ 사람들은 일찌감치 일본 공략에 힘을 기울였다.
이들은 일본에서는 ‘다(多)씨’로 통했다.



다씨 세력은 막강했다.
연개소문이 일본에 가자마자 쿠데타를 일으킬 근거를 마련한 것도,
이 외가의 엄청난 세력과 재력 덕이었다.


연개소문은 다씨 문중의 으뜸가는 제철 재벌 오노오미 홈치(多臣品治)의 여동생이요,
자신의 외가 숙모 되는 여인과 일본에서 결혼, 훗날 황후로 삼는다.


막강한 재력과 뛰어난 지략을 갖춘 여인이었다.
일본에서 연개소문의 ‘힘’은 이 여인에게서 빚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권력은 경제를 장악하고,
경제력은 언어를 사로잡는다.
언어 중에서도 가장 먼저 권력층이 장악하는 것은 바로 셈씨, 즉 수사(數詞)다.


경제는 어쩌면 ‘수’의 변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수 놀림 속에 경제는, 아니 정치는 굴러가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셈씨는 이렇게 해서 7세기 일본 땅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게 된다.



당시 도읍지 아스카에서 출토


1999년 1월, 일본 각 신문은 일본서 가장 오래된 동전 ‘부본전(富本錢)’이
나라(奈良)현 아스카(明日香)촌 연못에서 발굴됐다고 대서특필했다.


‘부본(富本)’이라고 새겨진 7세기의 동전 33개를 출토했다는 것이다.
아스카촌은 연개소문, 즉 덴무천황(天武天皇)이 도읍으로 삼은 고을이다.


일본 역사책 <일본서기>의 덴무천황(天武天皇) 12년(683년) 4월 15일 조에는
“지금으로부터 반드시 동전을 쓰도록 하라. 은전(銀錢) 쓰는 일은 없어야 한다”라는 대목이 보이는데,
그 기록과 합치되는 동전임이 밝혀진 것이다.


동전의 크기는 지름 2.5㎝, 무게 4.25~4.59g으로 한가운데 네모 구멍이 뚫려 있고,
구멍 아래 위에 ‘富本(부본)’이라는 한자와,
좌우에는 7개의 둥근 혹이 도드라져 있다.
이것은 일곱 개의 별, 즉 북두칠성을 나타낸 문양이다.
고대의 천문학에서는 북두칠성을 매우 중시했다.



그럼 이 ‘부본’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낱말일까.


중국 후한(後漢) 때 임금 광무제(光武帝·서기 25~57년)에게

마원(馬援)이라는 신하가 “국민을 부유하게 만드는 근본은 화폐”라고 주장,
‘오주전’ 제조를 건의했다는데,
‘부본’이란 낱말은 이 옛일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냐는 설이 일본 학자들 간에 나돌았다.


그러나 이 두 글자에는 보다 중요한 뜻이 담겨 있다.



2세기에서부터 4세기에 걸쳐 엮어졌다고 보여지는
중국의 고전 <산해경(山海經)>에는

동해의 해돋는 데에 있다는 신령스런 나무를 ‘부상목(扶桑木)’이라 부르고,

그 고장을 ‘부상국(扶桑國)’이라 했다고 적혀 있다.
또한 태양을 ‘부상(扶桑)’이라고도 했다.

부상은 ‘해’ ‘해 돋는 곳’ 등의 뜻으로 쓰여 온 것이다.

‘해 돋는 데와 가장 가까운 나라’의 뜻으로,
서기 670년 나라 이름을 ‘일본(日本)’이라 새로 정한 왜(倭)는,
‘부상(扶桑)’ ‘부상국(扶桑國)’을 일본의 또 하나의 이름으로 삼아 왔다.





부상(扶桑)=부본(富本)=일본(日本)



이 한어(漢語)를 우리 이두(吏讀)식으로 읽어 보자.


‘이두’란 한글이 없던 시절,
우리 고유의 말을 한자의 음독(音讀)과 훈독(訓讀)에서 빚어지는 소리를 이용해 나타낸 표기법이다.
글자라고는 한자밖에 없었던 시절, 한자를 한글처럼 썼던 것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읽으면,
‘부상(扶桑)’은 ‘부뽕’이라 읽힌다.
‘扶’는 음독으로 ‘부’, ‘桑’은 훈독으로 ‘뽕’이라 읽힌다.
그러나 ‘뽕나무의 뽕’은 고대에는 ‘봉’이라 발음했기 때문에,
한자 ‘扶桑’을 우리말 식으로 읽으면 ‘부봉’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스카 연못에서 발굴된 동전에 쓰여 있던 ‘부본(富本)’은
바로 ‘일본’을 가리키는 낱말이었음을 이로써 추정할 수 있다.
덴무천황 정권 사람들은 이 동전이 곧 ‘일본’ 고유의 화폐임을 나타내고자 했던 것이다.


나라에 고유의 화폐가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 나라 경제가 규모 있게 돌아감을 나타낸다.

고구려말 셈씨도 활발히 쓰였음은 물론이다.

경제의 주체가 고구려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고구려 셈씨는 일본땅에 뿌리 깊이 내리게 된 것이다.


그럼 다음 호에서는 고구려말 셈씨가 일본말 셈씨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살펴보자.



<이영희, 포스코 인재개발원 교수·작가, 2008년 09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