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철강이야기/4원술과제철무녀

36 한반도에서 건너간 7명의 일본 천황

慈光/이기영 2013. 7. 20. 16:18

 

 

 

이영희 교수의 고대철강사

<36> - 한반도에서 건너간 7명의 일본 천황

2009년 03월 19일

 


‘삼팔 따라지’의 거처를 방불케 하는 흙집.

가야시대(4~5세기) 유물인 집모양 토기.
높이 16.8㎝ 길이 15.2㎝ 폭 15.3㎝.

 

 

‘다라시’란 일본 천황 이름

지금으로부터 40, 50년 전의 일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삼팔 따라지’란 말이 유행했었다.
여기서 ‘삼팔’이란 북위 38도선을 가리킨다.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의 남부와 북부가 양단(兩斷)되어 있었을 무렵,
북쪽에 살고 있던 사람들 중의 일부가 끊임없이 남쪽으로 도망쳐 나오곤 했다.

 

38도선을 넘어 남쪽에 오는 행위를 ‘월남(越南)’이라 했고,
북에서 남으로 오는 사람들을 ‘삼팔 따라지’라 칭했다.
‘따라지’란 초라하고 가난한 존재를 가리켰다.

 

전 재산을 포기한 채 가족과도 헤어져 남쪽으로 도망 나온 이들은
스스로를 ‘삼팔 따라지’라 낮춰 부르며 남쪽에서의 삶을 개척해 나가고 있었다.

한편 ‘따라지’ ‘다라지’라는 말에는 ‘도망자’란 뜻도 있었다.


일본식으로는 ‘다라시(たらし)’라 불렸다.
보잘것없는 존재를 가리킨 말이다.

 

 

‘다라시 나카츠히코’는 연개소문

 

그런데 이 ‘다라시’라는 말은

일곱 명의 일본 옛 천황 이름에 쓰이고 있다.


그것은 곧 그 일곱 명의 일본 천황은 어디서부터인가 ‘도망쳐 나온’ 인물이란 사실을 의미한다.

그 중 한 명이 제14대 ‘다라시 나카츠히코(足仲彦)’라는 이름의 천황이다.
일본 천황에게는 사후에 일본식 이름과 한자식 이름 두 가지 시호(諡號)가 바쳐진다.
‘다라시 나카츠히코’란 이름은 그 중 일본식 시호요,

한자식 시호는 ‘중애(仲哀)’ 천황이다.

 

‘다라시 나카츠히코’란 ‘달아난 사나이’를 뜻한다.

 

고구려 최후의 장군 막리지(莫離支) 연개소문(淵蓋蘇文)이 바로 이 ‘달아난 사나이’,
즉 ‘다라시 나카츠히코’요, 덴무(天武) 천황이다.

 

연개소문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남생(男生)·남건(男建)·남산(男産)이다.
연개소문은 이 세 아들에게 나라를 잘 지키라고 당부한 후 일본으로 망명,
‘임신(壬申)의 난(亂)’이란 일본사(日本史) 최대의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손에 넣는다.

그러나 삼형제는 우애를 잃고 관계가 뒤틀려 결국 고구려는 당나라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아들로 인해 조국을 잃은 연개소문은 고구려로부터의 도망자,
즉 ‘다라시 나카츠히코’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냉철한 작명(作名)의 존재양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황후 이름에도 붙는 ‘다라시’

‘다라시’는 황후, 즉 고귀한 여성의 이름에도 흔히 붙는다.


‘오키나가 다라시히메’가 그 한 예다.

‘오키나가’란 무슨 뜻일까.

신라의 지명에 ‘근오기’가 있었다.


한자로 ‘斤烏支’라 쓰고 ‘근오기’라 읽어 온 것인데,
현재 포스코가 위치한 포항시 바닷가의 옛 지명이다.

‘근’은 ‘큰’, ‘오기’는 ‘오는 곳’ ‘닿는 데’ ‘항구’ 등을 뜻했다.
‘근오기’란 ‘큰 오기’, 즉 ‘대항(大港)’을 가리킨 낱말이었다.

 

포항은 현재도 동해의 남과 북을 잇는 가장 큰 항구인데,
고대에는 특히 고구려나 왜를 오가는 가장 큰 항구였다.

 

북위 36도선에 위치한 영일만 남쪽 구석에서 동쪽을 향해 직진하면 일본의 오키(隱岐)섬에 닿는다.
그리고 이 오키섬에서 똑바로 남하하면 일본 시마네현의 미호포구(美保浦口)에 닿는다.
고대 제철의 화려한 무대가 이곳으로부터 전개되는 것이다.

 

일본 섬 이름인 오키와 포항의 옛 이름 근오기의 오기.
작은 오기에서 큰 오기로, 뜀돌 딛고 건너듯 배 타고 나간 고대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오키나가’란 ‘항구를 나간’ 사람과 물건을 나타낸 고대 한국어임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오키나가 다라시 히메(姬)’라 하면,
항구를 나서서 일본으로 망명한 여성 귀인을 지칭하는 낱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서기>에는 초대부터 41대까지의 천황의 기록이 실려 있다.
이 중 ‘다라시(たらし)’라는 명칭이 붙는 천황과 황후는


△야먀토다라시히코쿠니오시히토(日本足彦國押人)
△오호다라시히코오시로와케(大足彦忍代別)
△와카다라시히코(稚足彦)
△다라시나카츠히코(足仲彦)
△오키나가다라시히메(氣長足姬)
△오키나가다라시히히로누카(息長足日廣額)
△아메토요다카라이카시히다라시히메(天豊財重日足姬) 등

일곱 명으로, 모두 7세기의 인물들이다.

 

동북아시아의 격동기에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던,
혹은 도망 다닌 최고 고위층의 면면이 선명히 그려진다.

   

<이영희, 포스코 인재개발원 교수·작가, 2009년 03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