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철강이야기/5제철상징초승달

47 포항은 신라 제철집단 근거지

慈光/이기영 2013. 7. 20. 16:29

 

 

이영희 교수의 고대철강사

 

<47> - 포항은 신라 제철집단 근거지

2009년 06월 04일

 

 

 

 

 

▶ 서기 157년 포항 도구에서 제철기술을 왕성하게 펼친
연오랑·세오녀 내외는 일본에서도 활발히 일했다.

구룡포 호미곶 해맞이광장에 세워진 연오랑·세오녀의 동상.

 

일본에 간 연오랑·세오녀

 

1285년 일연 스님이 우리나라 고대사에 관해 쓴 <삼국유사>에는
한국·일본 간 최초의 교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연오랑·세오녀’대목이 그것이다.

 

제8대 아달라왕 4년(서기 157년) 신라에는 햇빛과 달빛이 사라진다.

놀란 임금이 그 까닭을 묻자 신하들은
“해와 달의 정기인 연오랑·세오녀 부부가 모두 일본에 가 버렸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들 내외를 빨리 신라로 데려오라는 임금의 성화에,
신하들은 서둘러 일본으로 가 그들을 만나 신라로 돌아와 줄 것을 간청하나 고개를 젓는다.

 

대신 세오녀가 짰다는 세초(고운 비단) 한 필을 준다.
그리고 비단을 신라로 가져가 하늘에 제를 올리면, 햇빛과 달빛이 전처럼 빛날 것이라고 전한다.

신하들이 신라로 돌아와 연오랑이 시킨 대로 했더니,
정말로 신라땅에 햇빛과 달빛이 되살아났다.


반색한 임금은 이 비단을 서라벌의 임금 창고에 보관하고
그 창고에 ‘귀비고(貴妃庫)’라는 이름을 붙였다.
귀비란 세오녀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한편 제를 지낸 곳 역시 ‘영일현’, ‘도기야’라 부르고 아주 귀히 여겼다 한다.

 

 

일본에 제철기술 전수해줘

 

영일현은 지금의 포항,
도기야는 도구해수욕장을 내려다보는 해병대 사령부 일대의 언덕으로,
일찍이 ‘몰개월’이라 불린 곳이다.


요즘의 포항시 남구 오천읍 용덕리 60번지의 일월지 연못가 일대가 그 자리다.

 

 

이 이야기는 설화 형식으로 쓰여졌지만,
서기 157년 포항 도기야에 있던 제철 기술집단이 대거 일본에 진출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세초’라는 낱말로 ‘세(무쇠의 옛말) 지어’,
즉 제철의 옛말을 표현했고, ‘해와 달’로 제철신을 상징했다.
예부터 일월신 또는 명신은 제철신을 뜻했다.

세오녀가 짠 비단에 무쇠 짓는 기술을 붓글씨로 꼼꼼히 적어 주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고대에는 제철 작업시 화입을 하기 전과
작업이 끝난 다음에 반드시 일월신에게 제를 올렸다.
‘하늘에 제사 지냈다’는 대목은 이를 가리킨 것이다.

 

‘귀비’에도 뜻이 담겨 있다.
소리가 흡사한 ‘기비(긴 칼의 신라 말)’를 왕비를 가리키는 ‘귀비’란 말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베다’와 ‘칼’을 가리키는 신라말 ‘비’는 일본 고대 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요즘의 일본 오카야마 지방은 일찍이 ‘기비(吉備)’라 불렸다.
이 ‘기비’ 역시 ‘긴 칼’이란 뜻이다.


이 고장 또한 고대의 무쇠터였고, 긴 칼의 산지였다.
현재도 부엌칼의 명산지로 손꼽히고 있다.

 

 

연못인 일월지 주변에는 사당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는 이곳에서 해와 달에 제사를 지냈는데,
일본인들이 이 사당을 없애 버렸다 한다.


‘도기’와 ‘도구’는 ‘달’을 가리킨 동해안 일대의 옛말이다.

달은 한 달 간격으로 모습을 바꾼다.
초승달에서 반달, 보름달, 그믐달로 모습을 바꾼다 하여

‘도는 것’이라는 뜻의 ‘돌기’ ‘돌구’라 불렸다.


그런데 고대인들은 리을(ㄹ) 받침에 약해서 발음을 생략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즉 ‘돌기’는 ‘도기’로, ‘돌구’는 ‘도구’로 발음하곤 했던 것이다.
여기서 ‘도기야’란 ‘달벌판’을 가리키는 지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

 

 

2세기 때 일본으로 건너가

 

한편 내륙지방인 서라벌(요즘의 경주) 등지에서는 달을 ‘달아’라 불렀다.
내륙지방의 신라말 ‘달아’가 현대 한국어인 ‘달’로 바뀌었고,
‘달’을 가리킨 동해안 일대의 옛말 ‘도기’가 일본에 건너가

달을 가리키는 일본말 ‘즈키(つき·月)’가 된 것이다.

 

연오랑·세오녀의 이야기는 설화처럼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한·일 고대 교류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기록이다.

 

2세기에 이미 일본에 가서 왕이 되었다는 연오랑과 그의 귀비 세오녀.
일본사에서는 이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삼국유사>는
남편인 연오랑을 먼저 일본에 보내어 ‘왕’이 되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일본 사서 <풍토기> 등에는 세오녀가 먼저 일본에 건너간 것으로 남아 있다.
남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먼저 일본으로 도망친 아내의 모습으로 그려 내고 있다
.

 

일본 사서에 등장하는 연오랑의 이름은 아메노히보코(천일창·天日槍),
세오녀의 이름은 히메고소(비매허승 比賣許曾).
이들 내외는 뛰어난 제철왕이었다.

 

<이영희, 포스코 인재개발원 교수·작가, 2009년 06월 0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