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2.20
왕사성(라즈기르, Rajgir) = 現 Patna(파트나)市 남쪽 비하르(Bihar) 지방,
옛 佛陀께서 설법하시던 시대의 강국 마가다(magadha)국의 수도 라자그리하(Rajagriha)
라즈기르는 마가다국 빔비사라왕의 초청을 받은 부처님께서 1,000여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설법을 하셨던 곳.
이 곳에서 빔비사라왕의 정성어린 지원과 신심에 힘업어 불교교단은 왕사성에서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참조 : 아제여행사 자료)
영축산
영취산, 靈鷲山=영묘한 독수리의 모양을 한 산, 기자쿠타산(gijhakuta)
지난 밤 바라나시를 돌아보고 무려 270km를 달려 라지기르에 도착한 새각이 새벽 3시경이었다.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하고 05:30분에 기상하여 영축산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법화경>의 배경이 되는 영축산
영축산은 법화경의 서품에 나오는 수 많은 불보살님들의 수행처이며 배경이 된 곳.
영축산 정상에는
부처님께서 주석하시던 수행처인 <향실>을 중심으로 다섯 개의 대(臺)가 있다.
중국에 불교를 전한 가섭마등과 축법란은 오늘날 중국의 오대산이 인도의 영축산과 닮았다고 해서 오대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빔비사라왕길을 따라 걸으며 부처님께서 주석하신 향실이 나온다.
5개의 능선,
바로 우리의 산 오대산과 일맥하는 것으로 이곳에서 문수사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영축산 향실의 위치는
왕사성을 굽어 볼 수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의 오대산 적멸보궁자리와 같은 지형을 가지고 있다.
향실을 중심으로 총 5대가 있다.
이곳이 한국과 중국의 오대산 모델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부처님 말년에 법화경(묘법연화경)을 설하셨는데,
법화경의 주요 내용은 부처님께서 수 많은 제자들에게 내세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삼계화택 비유, 궁자장자 비유, 살상투 비유, 약초 비유)를 주셨던 곳이다.
향실에 앉아서 법화경 사구게를 간파한다면 이는 곳 부처님의 수기를 받는 덧이라 할 수 있으며,
옛 왕사성터를 바라보며 사구게를 온몸으로 받아들여 보는 기쁨은 이 곳에서만 알 수 있을 것이다.(내용참조 : 아제여행사)
영축산 부처님 향실에서 일출을 맞는다.
보리수 나무에 둘러쳐진 각종 깃발
정상의 바위 모양이 영락없는 독수리 머리 모양이다.
이런 깃발은 <00000> 경전의 문구를 적어 놓았다.
차마고도의 티벳 마방들도 이런 깃발을 달아 놓고
기도하는 모습을 얼마전 다큐에서 본 적이 있다.
다문제일 아난존자와 사리불존자, 마하가섭존자의 동굴이 지금도 남아 있다.
스투파 = 탑
이곳에도 소들이 자유롭게 유영한는 듯 하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자귀나무
흰소와 박쉬쉬(적선)하는 사람들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것이 그들의 문화이며
생활의 한 단면으로 보면 좋겠다.
우리의 가이드는 적선하는 이에게 눈길도 마주하지 말라고 한다.
습관이 된다고....
그러나 어찌하랴~ 이미 그들은 그렇게 습에 젖어 있는 것을.....
정상까지 이어지는 곤돌라,
자이나교(?)에서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지바카의 병원터
왕실과 부처님의 주치의
수레바퀴 자국
부처님께서 영축산에 머물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설법을 듣기 위해 수레를 타고 몰려 들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 있다가 최근에 발굴되었다고 한다.
금방이라도 수레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이 기록을 보고 이 곳이 수레 바퀴 자국이라고...
목동이 소들을 몰고 아침 먹이활동을 나가는 모습이다.
이정표
산티탑, 곤돌라, 자이나교 사원 표시
빔비사라왕의 감옥터
아들인 아자타사트루에게 감금되어
최후를 맞이한 빔비사라왕의 감옥 터
감옥은 구 왕사성 내성의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는 사방 60m의 정방향의 터만을 알아 볼 수 있게 얕게 돌을 쌓아 놓았다.
이곳에서 영축산이 환히 올려다 보인다.
부처님이 열반하시기 8년 전에 빔비시라왕은
이 곳 감옥에 갇혀 창문을 통해 영축산을 바라보며
부처님께 예배드리며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빔비사라왕의 부인인 위제히 부인이 주인공이다.
여자로서는 여인 중에 최고의 지위가 바로 왕의 부인 즉 왕비이다.
그러니 행이 곧 불행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아들 아자타사투가 아버지를 치고 왕위에 오르는 순간에 가장 비참한 여인이 되었고....
아들이 이기면 남편이 죽고 아버지가 이기면 아들이 죽어야 하는 것이요.
빔비사라왕과 위제히 부인은 결혼을 했지만 아이가 없었다.
어느 날 왕이 선인에게 아이가 언제 생길 것인가 묻게 되는데 '3년 후'라는 말을 듣는다.
이유는 산에서 수행하고 있는 수행자가 명이 3년이 남았는데
그 수행자가 죽으면 빔비사라왕의 아들로 태어날 것이라고 하였다.
왕은 도저히 기다리기 힘들어 대신을 보내 빨리 죽으라고 청하지만 수행자는 거부하였고,
당시 왕명을 거부하면 죽음을 당하게 되던 시절이라, 수행자는 죽게 되었다.
죽으면서 내 꼭 복수를 하겠다 다짐을 한다.
그후 정말 아들이 태어났고,
예언자의 말이 생각난 왕은 옥상에서 아이를 던져 죽게 한다.
그런데 손가락 하나만 부러지고 멀쩡하자.
금지옥엽 키우지만,
출생의 사연을 데바닷다로부터 듣게 된 아자타사투는 아버지를 치고 왕위에 오른다.
빔비사라왕이 감옥에 갖혀 있자 ,
위제히 부인은 세상을 한탄하며 행이 곧 불행임을 알았을 것이다.
부처님은 위제히 부인에게 괴로움이 없는 세상을 보여주고
그곳에 날 수 있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관무량수경의 내용이다.<참조:정토회 자료>
부왕을 감옥에 가두고 먹을 것을 주지 않자,
왕비는 온몸에 꿀을 바르고 면회를 가서 남편에게 그것을 먹고 연명하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분명 굶어 죽어어야 할 시기에 멀쩡히 살아있음에
연유를 알게 되자 어머니마져 가두어 버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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