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철강이야기/1연개소문과천무천황

06 미스터리 대하드라마 일본서기

慈光/이기영 2013. 7. 20. 15:40

 

 

 

[이영희교수의 고대철강사]


(6)한·일 고대왕조의 진상 - 철강 기술 교류를 중심으로



사실과 허구 결합된 ‘일본서기’
‘천무 연개소문’ 발자취를 여러 천황 이야기로 토막내 기술



 

<일본서기> 편찬자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창출했다.
여러 사람의 ‘천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천무에 관한 얘기를 여러 명의 천황 얘기로 토막내 기술하는 분할표현법이 그것이다.



미스터리 대하드라마 ‘일본서기’



일본 고대사 책 <일본서기(日本書紀)>는 마치 추리 대하드라마 같다.
720년 일본 조정이 펴낸 정부 간행물이지만,
그 구성이 기기묘묘해 추리소설 뺨치게 재미있다.



<일본서기>는 이른바 신들의 시대인 ‘신대(神代)’에 이어,
초대왕 진무(神武·신무)에서 덴무(天武·천무),
지토(持統·지통)에 이르기까지 41명의 덴노(天皇·천황)들의 이야기를 엮어 놓은 정사서(正史書)다.



‘팩트(fact) + 픽션(fiction) = 팩션(faction)’



초대왕 진무,
즉 신무의 즉위를 기원전 660년으로 잡는 등 황당무계한 구성으로 일관돼 있지만,
그 중에는 놀랄 만큼 정확하게 역사적 사실을 묘사해 놓은 대목도 적지 않다.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뒤섞어 만든‘팩션(faction)’이 요즘 유행한다는데
<일본서기>야말로 대형 팩션에 속한다.


이 역사책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덴무천황(天武天皇)을 미화하기 위해 편찬됐다.


쿠데타의 당위성,
덴무라는 인물의 탁월성,
그 집안의 정통성 등등이 자세히 기술돼 있다.



그러나 쿠데타는 어쩔 수 없이 쿠데타일 수밖에 없어
암살과 부정한 모의가 동원되게 마련이다.
게다가 고구려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일본을 공략한 사실을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
이 같은 문제를 모두 외면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일본서기> 편찬자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창출했다.
여러 사람의 ‘덴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덴무에 관한 얘기를 여러 명의 천황 얘기로 토막내 기술하는 분할표현법이 그것이다.



초대천황 진무 대목에서는
연개소문이 일본에 와서 각 지방 토후들을 공략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그리고 제2대 천황 대목에서는
덴무가 덴지(天智·천지) 천황을 암살함으로써
쿠데타의 첫 단추가 끼워지는 장면을 묘사한다.
이때 전혀 다른 이름으로 사건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어 제14대 천황 대목에 가서는 덴무가 죽을 때 이야기가 펼쳐지도록 해 놓았다.



덴무는 정상적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암살된다.

임신(壬申)의 난(亂)이란 쿠데타를 함께 일으킨 양자 다케치(高市·고시)에게 죽음을 당한 것이다.


다케치 왕자는 연개소문,
즉 덴무가 죽인 덴지천황의 친아들이다.
덴무와 다케치는 뜻이 통해 함께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성공 후에 자신을 하대하는 덴무에게 원한을 품은 다케치는
덴무를 제거할 기회를 항상 노려왔던 것이다.



이 같은 죽음을 차마 본명으로 기술할 수 없어
덴무도 다케치도 모두 가명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덴무는 여기선 ‘14대 천황 주아이(仲哀·중애)’로 둔갑돼 있다.
그리고 실제 ‘다케치’라 불린 고시는 여기선 ‘다케우치(武內·무내)’로 이름이 약간 달라져 있다.



실존인물과 가공인물 뒤섞어



덴무는 40대 천황이다.


14대와 40대.

다케우치와 다케치.
묘한 대비다.
‘주아이(仲哀)’라는 이름도 다분히 상징적이다.
‘인생의 중도에서 타의에 의해 슬픔을 당했다’는 뜻을 지닌 이름이 아닌가.


<일본서기>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보면,
진실 파악이 가능하도록 구성해 놓은 교묘한 역사서다.
묘하게 진상을 밝히고 있는 위서(僞書)가 바로 <일본서기>라 할 수 있다.
요컨대 한 사람의 천황 이야기를 토막내 여러 천황의 이야기로 엮어 놓았다.


덴무천황의 역사만 토막낸 것이 아니다.
덴무가 암살한 선대 덴지천황도 게이코(景行·경행)라는 이름의 12대 천황으로 분산 서술돼 있다.


게이코천황에게는 쌍둥이 아들이 있었다.
그 중 동생은 야마토다케르(日本武·일본무)라 불렸는데,
힘이 장사인 데다 얼굴도 잘생겼다 한다.
그러나 게이코천황은‘성미가 사납다’하여 야마토다케르를 멀리 싸움터로 내보내기 일쑤였다.
다케르가 반발한 것은 물론이다.


이 대목의 서술을 통해 덴지천황에게도 쌍둥이 아들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고,
그 중 동생이 다케치라 불린 고시 왕자였음을 추측하게 된다.

<일본서기> 집필자는 다케르와 다케치,
흡사한 두 이름으로 이 같은 사실을 은연중에 일러주고 있는 셈이다.
교묘한 필법이다.



<일본서기>는 41대 지토(持統)여왕 기술로 끝나고 있다.
지토는 덴무천황의 황후였다.
687~696년에 천황 자리에 있었던 여성으로 돼 있으나,
실제로 그녀는 천황에 오른 적이 없다.
다만 ‘황후’라는 직분으로 막강한 실권을 행사했을 뿐이다.
<일본서기>의 주아이천황의 황후 진구(神功·신공) 대목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천황급의 황후로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진구의 실존 여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가공의 인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 ‘진구’라는 여인은 없다.
그러나 지토황후라는 여인은 7세기 중반~8세기 초에 실존했던 인물로,
진구는 그녀의 그림자인 셈이다.


진구황후는 지토의 더블 이미지다.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천황들은 대부분 이와 같이 더블 이미지 내지 트리플 이미지로,
아니 그 이상 분화된 모습으로 묘사돼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고대사 책이 매우 복잡다단하고 어렵기는 하지만,
이 분리기법만 터득하면 이처럼 재미있는 미스터리물도 없다.


<일본서기>는 기원전 660년부터 서기 696년까지
약 1000년에 걸친 천황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여겨져 있으나,
실은 7세기의 일본사를 서술한 책이다.
한문으로 서술돼 있지만,

인명과 지명, 노래, 회화() 등의 경우 우리 옛말로 해독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일본 고대어와 우리 고대어가 흡사했기 때문이다.


<일본서기>를 읽다 보면
우리 주변에서 이미 사라진 옛말과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아 이 또한 우리를 즐겁게 해 준다.
연개소문의 일본식 이름도 그 중의 하나다.


<이영희, 포스코 인재개발원 교수·작가, 2008년 08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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