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교수의 고대철강사]
(4)한·일 고대왕조의 진상 - 철강 기술 교류를 중심으로
일본서 개국 성공한 연개소문
당나라 소설 ‘규염객전’은 그를 모델로 ‘큰 인물’ 묘사
10년 뒤 동남쪽 수천리 밖에서 큰 사건이 일어날 것이오.
그때가 곧 내 일이 성공하는 날이오.
그 소식을 들으시거든 이랑(李郞)과 내 누이동생은 동남쪽을 향해 술을 뿌리고 축하해 주기 바라오.
▶ 고구려 재상 연개소문을 모델로 한 당나라 소설 <규염객전>의 첫머리와
이 책이 실린 <앵앵전>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표지.
붉은 수염의 사나이
<규염객전(叫髥客傳)>은 당(唐)나라의 작가요 사학자인 두광정(杜光庭)이 쓴 소설이다.
고구려 말의 대재상(大宰相) 연개소문(淵蓋蘇文)을 모델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여기서‘규()’는 ‘뿔 없는 용 규’, ‘염(髥)’은 ‘구레나룻 염’이다.
따라서 규염이란 ‘용의 구레나룻(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을 가리킨다.
용의 구레나룻은 지난 2호 연재 글(7월 10일자 포스코신문)
‘제철을 상징하는 청룡’에 실린 용그림처럼 붉고 오글오글 구불어져 있다고 한다.
연개소문은 이런 형태의 턱수염을 지녔던 모양이다.
규염객·이정의 운명적 만남
당나라 2대 황제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이 나라를 통일하기 전
- 훗날 이세민의 오른팔로 크게 활약하는 병법의 명수 이정(李靖) 위국공(衛國公)이
처사(處士·벼슬을 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였을 때의 이야기다.
매우 총명하고 아름다운 기녀를 알게 된 이정은
그 여인과 함께 멀리 달아날 생각으로 집을 나와 마을의 한 여관에 묵게 된다.
화로에 올려놓은 양고기가 익어 갈 무렵
한 나그네가 당나귀를 타고 여관에 도착한다.
보통 키에 수염은 용의 수염처럼 붉고 꾸불꾸불했다.
나그네는 배낭을 화롯가에 내던지며
마루에 기대어 이정의 애인이 머리 빗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화가 난 이정은 한 마디 하려다가 여인이 제지하자 참고 있었다.
머리를 다 빗은 여인은 그 나그네에게 공손히 인사하며 성씨를 물었다.
“장(張)가요!”
그가 대답하자 여인은 자신도 같은 장씨라면서
“오늘은 오라버니를 만난 기쁜 날”이라며 이정을 오라고 해 오라버니에게 인사드리라고 재촉한다.
이래서 셋은 친해지고, 양고기에 호떡과 술을 곁들여 식사를 했다.
나그네는 안줏거리가 조금 남아 있다며
자신의 배낭에서 사람 머리 하나와 염통과 간을 꺼냈다.
그러더니 머리는 배낭에 도로 집어넣고,
비수를 꺼내 염통과 간을 써는데 그 칼솜씨가 대단히 날렵했다.
나그네가 배낭 속의 머리통을 가리키며
“이놈은 천하의 배신자로, 내가 10년 동안 원한을 품어 오다가 비로소 잡았으니
가슴에 맺힌 한이 이제야 풀렸지”하며
“혹시 이 수(隋)나라 땅에 아주 빼어난 인물이 있다는 말을 못 들었소?”라고 물었다.
이정이 한 사람 알고 있다고 하자, 나그네는 그 사람을 꼭 만나게 해 달라고 말했다.
붉은 수염의 사나이는 이정의 소개로 당시 스무 살밖에 안 된 이세민과 만난다.
이세민은 당시 한낱 장수의 아들로,
규염객과 만날 때 예복도 입지 않은 평복 차림이었으나 의기는 충만했다.
붉은 수염의 사나이는 묵묵히 술을 마시며 이세민을 보고 있다가 말했다.
“진정한 천자(天子)의 상(相)이로군!”
그러고 나서 그는 이정에게 말했다.
“내 누이와 함께 낙양(洛陽)에서 만납시다.”
10년 후 실현된 예언
이정과 그의 애인은 규염객이 정한 날,
정한 장소에 찾아가 보니 여러 겹의 울타리로 에워싸인 대궐이 보였다.
대궐 안에서 사모(紗帽)를 쓰고 가죽옷을 입은 규염객이
그의 아내와 함께 나타나더니 요리상을 들여오게 하고 악사들로 하여금 음악을 연주하게 했다.
식사 후에 하인들이 20개의 상을 맞들고 나왔는데,
상 위에는 문서와 열쇠로 가득 했다. 규염객이 말했다.
“이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보물과 돈을전부 기록한 문서요.
그리고 이것은 그 보물과 돈상자의 열쇠요.
이제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드리겠소.
부디 이것들을 유용하게 써서 이세민 공이 나라를 창업할 수 있게 해 주시오.”
이어 그는
“10년 뒤 동남쪽 수천리 밖에서 큰 사건이 일어날 것이오.
그때가 곧 내 일이 성공하는 날이오.
그 소식을 들으시거든 이랑(李郞)과 내 누이동생은 동남쪽을 향해 술을 뿌리고 축하해 주기 바라오.”
이 말을 끝으로 붉은 수염의 사나이는 아내와 하인 한 사람만 데리고 말을 타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 후 꼭 10년이 지났다.
재상 직에 있던 이정 위국공은 어느날 남쪽 나라에서 왔다는 사람의 보고를 들었다.
“어떤 사람이 1000척의 배와 갑옷으로 무장한 10만 군대를 거느리고
부여국(夫餘國)으로 들어가 그 나라 군주를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 질서는 이미 안정됐습니다.”
이정은 붉은 수염의 사나이가 성공했음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함께 예복으로 갈아입고
멀리 동남쪽을 향해 술을 뿌리고 축하의 예를 올렸다….
<규염객전>은 다음과 같은 구절로 끝을 맺고 있다.
“이위공의 병법 중에서 그 절반은 곧 규염객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이위공,
즉 이정은 당대 으뜸가는 병법가였다.
그 이정이 규염객에게 ‘절반’을 배웠다 한다.
당나라 때 소설은 소설 형식을 빌린 실록의 성격을 띤 작품이 많다고 한다.
<규염객전>도 그 중 한 가지로,
이 책에서 한때 중국 대륙을 석권하며 기회를 노리던 연개소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당대 소설선집인 <앵앵전(鶯鶯傳)>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을 번역하고 해설을 쓴 정범진(丁範鎭·전 성균관대학교 총장) 교수는
‘규염객’이 고구려의 명장인 연개소문의 화신(化身)이라는 점에서 특히 흥미를 끈다고 한다.
연개소문이 일본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는 사실은
이같이 당나라 소설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그가 병법에 통달했다는 사실까지,
실재했던 인물 이정의 병법서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흥미로운 사실은 또 있다. - 다음 호에 계속 -
<이영희, 포스코 인재개발원 교수·작가, 2008년 07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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