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철강이야기/1연개소문과천무천황

01고구려 연개소문과 일본 천무천황

慈光/이기영 2010. 4. 28. 04:15

 

 

 

[이영희교수의 고대철강사]

(1)한·일 고대왕조의 진상 - 철강 기술 교류를 중심으로

일본 천무천황이 곧 연개소문?
고구려 수산리 고분 벽화와 닮은 일본 벽화
다카마쓰즈카 고분의 수수께끼



일본 중부지방 나라(奈良)현(縣) 아스카(明日香)촌.
마을 사람들이 생강을 저장하기 위해 산비탈을 파고 있었다.
굴 창고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한참 파들어가다 보니 반듯한 돌 더미가 나타났다.
자연석이 아니라 인공의 돌무더기였다.
그곳이 옛 궁전터가 아니면 무덤이라는 얘기다.
놀란 마을 사람들은 당국에 신고하여 지역 고고학연구소로 하여금 그 일대를 발굴케 했다.
마을 사람들이 초기 발굴 비용을 스스로 감당했던 것이다.


그러자 그 자리에서 상상을 넘어서는 눈부신 고분벽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1972년의 일이다.
고분의 이름은 다카마쓰즈카(高松塚·고송총).
7세기 말 ~ 8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그간 일본 학자들은 7세기에 일본에서는
고분벽화가 축조되지 않았다고 단정해 왔는데,
다홍과 초록빛의 화려한 옷차림의 궁중 시녀들과 시종 등
열여섯명의 총천연색 남녀상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일본의 나라현 아스카촌에서 발굴된 고송총 고분벽화 속 여인들.
아래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여인들의 옷 입음새와 흡사하다.



고구려 양식 닮아


특히 여인들의 옷 입음새는 고구려 고분벽화와 매우 흡사하여 보는 이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반코트형의 긴 상의를 허리띠로 묶고, 색동 주름치마는 길게 발을 덮고 있었다.
5세기의 수산리(修山里) 고분과 쌍영총(雙楹塚) 고분 등의 벽화 속 여인상과 영락없이 닮았다.


고구려 고분 속 인물상과 흡사한 차림의 여인 그림에 휩싸여 묻힌 인물.
고송총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무덤 속 돌 관에는 백골이 안치되어 있었지만 두개골은 없었다.
척추의 맨 위 뼈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칼로 목이 잘린 것은 아니고,
해골이 된 상태에서 누군가가 머리 부분을 빼 달아난 것으로 추측되었다.
한편 부장품으로 대도(大刀)라 불리는 긴 칼의 칼집만 있을 뿐 칼은 없었다.


시신에서 머리 부분을 떼어낸다는 것은,
죽은 이가 다시 부활하지 않도록 하는 방비책으로 삼아져 왔다.
칼집에 칼이 없는 것도 망자의 항거를 사전에 차단하려 함이었다.


없어진 머리 부분까지 보태어 계산하면,
고송총 무덤의 주인공 키는 163㎝가량.
근육과 골격이 발달된 남성으로, 죽었을 때의 나이는 40~50세 정도.
노인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인골 감정 결과였다.


50세 이상의 근골이 튼실한 사나이.
대도를 부릴 줄 아는 칼잡이.
생전에 시종과 시녀들에 에워싸여 수발을 받던 고위층.
무덤의 임자는 왕족 이상의 높은 신분이었음을 능히 짐작케 했다.


고송총 천장에는 28자리나 되는 별자리가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어
성좌에 관한 지식을 지닌 사람들을 감탄케 했다.
천장벽 중앙에 온지름 1㎝가량으로 도려낸 금박 동그라미가 무수히 발라져 있다.
이들을 붉은 선으로 이어 여러 개의 별자리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한가운데는 자미궁(紫微宮)이 표시되어 있다.
천제(天帝) 즉, 하늘 임금의 거처가 바로 자미궁이다.
천장 벽 한가운데 자미궁의 천극성(天極星),
즉 북극성이 그려져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무덤에 묻힌 이가 매우 고귀한 인물이었다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천문 사정에 밝은 일본 사학자 아리사카 다카미치(有坂隆道)씨는
이 무덤의 피장자(被葬者)로 가장 합당한 인물을 꼽으라면
덴무(天武·천무)천황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럼 덴무, 즉 천무란 누구인가.


7세기 후반의 일본 천황.
젊었을 때 이름은 오아마(大海人·대해인).
672년 임신(壬申)의 난()에 승리하여 673년 아스카에서 즉위, 686년까지 재위.
관직을 개정하고 법률을 제정. <일본사> 편수에 처음으로 착수하기도 했다.

▶ 수산리 고구려 고분벽화의 부인상.
5세기에 축조된 수산리 고분은

남포시 강서구역 수산리(옛 평안남도 강서군 수산리)에 있다.



일본 서기에 연개소문 유언이 왜?


너희들 형제는 물고기와 물처럼 서로 화목하라.
결코 감투를 두고 다투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 같은 일을 벌이면 반드시 이웃 나라의 웃음거리가 될지니….


일본 사전 <고지엔(·광사원)>의 천무천황 대목을 요약한 것이다.
요컨대 임신의 난이라는 일본 역사상 최대의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쥔 인물이 천무라는 천황이다.
쿠데타로 쓰러뜨린 상대는 백제계 일본 정권.


당시의 일본 천황, 즉 왜왕은 백제 무왕(武王)의 아들 교키(翹岐·교기)였다.
무왕에게는 이 교키 외에 의자(義慈)란 아들이 있었는데,
무왕이 죽은 다음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싸움이 벌어졌다.
의자가 이 싸움에 이기자, 무왕의 비(妃)였던 어머니와 함께 일본으로 망명했던 것이다.


당시 일본 땅에서 백제 세력은 막강했다.
생전의 무왕은 일본 천황을 겸직하고 있었다.
무왕이 죽은 뒤 아들 교키와 함께 일본에 망명한 무왕의 비는 일본에 가자마자 여왕으로 등극했다.
일본은 백제 분국(分國), 식민지나 다름없었다.
이 같은 백제계 일본 정권을 쿠데타로 쓰러뜨린 천무, 즉 대해인이란 어떤 인물인가.
일본 고대사를 연구해 온 여류사학자 고바야시 야스코(小林惠子)씨에 의하면,
천무는 바로 고구려 말기의 대재상(大宰相) 연개소문(淵蓋蘇文)이라 한다.


고바야시씨는 <천무는 고구려에서 왔다>(별책 문예춘추·1990년 여름호)에서
<일본서기>에 연개소문의 유언장이 세세하게 기술되어 있다고 지적하며
고구려의 역사책에도 없는 고구려 대신의 유언 내용까지 <일본서기>가 밝히고 있는 것은
연개소문이 곧 천무요, <일본서기>를 편찬케 한 이 또한 천무천황이기 때문이라 주장하고 있다.


연개소문의 유언은
남생(男生)·남건(男建)·남산(男産) 등 아들 삼형제에게 남긴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다.


‘너희들 형제는 물고기와 물처럼 서로 화목하라.
결코 감투를 두고 다투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 같은 일을 벌이면 반드시 이웃 나라의 웃음거리가 될지니….’


고바야시씨 또한 고송총의 피장자는 천무라 보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666년에 죽었다고 기술되어 있는 연개소문, 바로 그 사람이다.
그가 어째서 괴기 추리소설의 등장인물처럼 두개골이 없는 형상으로
일본 땅에 묻혀 있었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더군다나 일본 천황까지 되었다는 연개소문이다.
고바야시씨의 주장을 좀 더 살펴보자. - 다음 호에 계속-


<이영희, 포스코 인재개발원 교수ㆍ작가, 2008년 07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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