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철강이야기/1연개소문과천무천황

10 동요 - 요시노강의 은어

慈光/이기영 2013. 7. 20. 15:45

 

 

[이영희 교수의 고대철강사]



(10)한·일 고대왕조의 진상 - 철강 기술 교류를 중심으로




일본 지명 ‘시마’는 일관제철터
동요 ‘요시노강의 은어’로 바다 건너온 연개소문 빗대



바다에서 살다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은어의 특성 때문에,
고구려에서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와 쿠데타까지 일으킨 연개소문을,
은어에 빗대 야유한 노래가 ‘요시노강의 은어’다.



쿠데타 중에 유행한 노래



672년, 연개소문이 일본서 일으킨 쿠데타 ‘임신(壬申)의 난(亂)’ 중에 유행한 노래가 있다.
‘요시노(吉野·よしの)강의 은어(銀魚)’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는 노래다.


요시노강이란,

나라(奈良·なら)현(縣) 남부의 넓은 산지(山地)와 요시노초(吉野町)에 걸쳐 흐르는 굴곡이 많은 강이다.


은어는 우리나라와 일본 등 동아시아의 강에 주로 사는 20~30㎝ 길이의 민물고기로,
새끼일 때는 바다에서 지내다 자라면 강물을 타고 올라가 맑은 여울에서 살며,
모래나 자갈 밑에 알을 낳는다.


한강과 두만강을 제외한 우리나라의 모든 강에 사는 맛과 향이 좋은 물고기다.




은어의 일본말 ‘아유(あゆ)’의 숨은 뜻


은어의 일본말은 ‘아유(あゆ)’다.
쿠데타 때, 왜 요시노강의 은어 노래가 유행한 것일까.


당시 연개소문은 요시노강변에 살고 있었다.
또한 은어는 바다에서 살다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특성이 있다.
이 두 사실로 볼 때 고구려에서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와
임금자리에 오르려고 쿠데타까지 일으킨 연개소문을,
은어에 빗대 야유한 노래가 ‘요시노강의 은어’다.


은어의 일본말 ‘아유’는,
‘가장 높은 곳으로 간다’는 뜻의 우리 옛말 ‘아예’가 바뀐 낱말이다.

‘아’는 ‘가장 높은 곳’ 또는 ‘최고의 것’을 가리키는 우리 고대어요,
‘예’는‘간다’를 뜻하는 옛말이다.


‘최고로 높은 곳’이란 바로 임금자리를 의미했다.
바다에서 하류를 지나 상류까지 헤엄쳐 오르는 물고기 은어의 노래는,
요시노강변에 살면서 임금자리를 노린 연개소문을 비난한 노래였던 것이다.
물론 연개소문, 즉 훗날의 덴무천황(天武天皇) 반대파들이 지어 퍼뜨린 노래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가사를 지어 아이들로 하여금 부르게 하는 노래를,
고대의 일본인들은 ‘동요(童謠)’라 불렀다.
신라의 수도 서라벌에서 유행한 ‘서동요(薯童謠)’와 흡사한 노래들이다.


‘서동요’는 훗날의 백제 무왕(武王)이 ‘서동’이라는 이름의 청년이었을 때,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셋째 딸 선화(善花)공주가 밤마다 서동을 찾아온다며,
아이들을 시켜 서라벌 장안에 유행시킨 노래다.

이 노래 때문에 선화공주는 왕궁에서 쫓겨나
서동, 즉 훗날의 백제 무왕과 결혼하게 된 것이다.
노래의 힘은 대단하다.



‘요시노강의 은어’는 일본 조정이 편찬한 역사책
<일본서기>의 덴지천황(天智天皇) 대목 맨 뒤에 실려 있다.
덴지는 연개소문에 의해 암살된 천황이다.
덴지천황 암살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호에서 밝히겠다.


연개소문은 덴지천황이 죽은 다음
그 아들 오오토모(大友·おおとも) 황태자가 즉위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그럼 그 동요라는 것을 현대의 우리 말로 옮겨 보자.



물의 요시노(吉野),
요시노의 은어여

은어 꽂이 하고파
시마 패 모았으니
아! 그르지요(그릇된 일이지요)
해내지는 못해
재지도(뽑내지도) 못해
알리고파라 아! 그르지요


‘요시노강에 사는 은어 아유(あゆ),
위로 올라가 임금이 되려고 하는 은어여,
칼로 꽂아 없애고 싶네.
뜻대로는 안 될 것이네.
시마 패 모았으니 그건 아주 나쁜 짓이네’


라는 내용의 노래다.



‘시마 패 모았으니 나쁜 짓이다’는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시마(島·しま)’란 ‘섬’을 뜻하는 일본말이다.

그런데 일본 지명 중에는 섬이 아닌데도
‘시마’자(字)가 붙은 지역이 시마네(島根)·히로시마(島)·가시마(鹿島)·시마반도(志摩半島) 등 수두룩하다. 이와 같이 섬 아닌데도 ‘시마’자가 붙은 지역은,
영낙없이 고대의 제철터였던 곳이다.



전국에 산재한 제철집단 끌어 모아


‘사·시·수·세·소·수에’ 등의 낱말은 모두 ‘무쇠’를 가리키는 우리 옛말이었다.
‘마’는 ‘공간’ ‘터’를 뜻하는 역시 우리 옛말.
이 말이 일본으로 건너가 그대로 ‘공간’을 뜻하는 일본말 ‘마(間·ま)’가 되었다.


‘시마’란 ‘무쇠 터’를 가리키는 우리 말이요,
동시에 일본말인 것이다.

따라서 ‘시마 패’란 ‘제철집단’을 뜻하는 말로,
제철집단의 세력 규합을 비난하는 노래 마디임을 알 수 있다.


일본에는 엄청나게 많은 고대 제철터가 있었다.

규슈(九州) 일대와
시코쿠(四國)·히로시마(島)·오카야마(岡山)·시마네(島根)·
돗토리(鳥取)·후쿠이(福井)·아이치(愛知)·기후(岐阜)·
시가(滋賀)·이시카와(石川)·미에(三重)·효고(兵庫)·시즈오카()현 등을 비롯해
이와테(岩手)·미야기(宮城)·후쿠시마(福島)현 등 동북지방과,
이바라기(茨城)·군마(群馬)·토치기()·치바(千葉)현 등의 관동(關東)지방은 물론,
지금의 수도인 도쿄(東京)와 대도시인 오사카(大阪),
옛 도읍지 교토(京都)·나라(奈良)에 이르기까지,
일찍이 제철터 아닌 고장이 드물다.



이들 지방에는 수많은 강이 흐르고 있고,
그 강변에는 제철의 원자재인 질(質) 좋은 사철(砂鐵)이 풍부히 쌓여 있었으며,
주변 산에는 땔감인 나무들이 풍성히 자라고 있었다.


원자재인 사철의 질적·양적 차이는 있었을 망정
일본 전체가 거의 제철터였던 셈이다.
고대의 일본은 보기 드문 제철왕국 중의 하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개소문이 일찌감치 일본 땅에 집착,
자주 들락거리다가 7세기 중반부터는 이들 제철터를 상당부분 장악했음을 그의 행적으로 짐작케 된다.


특히 그가 노린 곳은
요즘의 오카야마(岡山)현으로,
당시에는 키비시마(吉備島)라 불린 무쇠칼의 명품 고장이었다.


‘키비(吉備·きび)’란 ‘기비’, 즉 ‘긴 칼’을 뜻한 우리 고대어다.
그리고 ‘시마(島·しま)’란 앞에서 설명한 대로 ‘제철터’의 뜻.
이 제철터의 개념엔 칼 등의 철기를 만드는 단야장(鍛冶場)까지 포함된다.
무쇠를 불리고 그 불린 선철이나 강철로 철기를 두드려 만드는 대장 터 역할까지 맡아 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일관제철터였던 셈이다.
기비, 즉 오카야마의 수령(首領)은 원래 덴지천황 휘하였는데,
쿠데타에 앞서 연개소문 휘하로 들어갔다.
배신을 한 것이다.

죽은 덴지의 아들 오오토모 황태자는 크게 노하고,
즉각 자객(刺客)을 보내 그를 살해했다.
큰 사건이 빚어진 것이다.



‘요시노강의 은어’에 보이는

‘시마 패 모았으니, 아! 그르지요(나쁘지요)’란

기비 고장을 비롯해 수많은 무쇠터를 끌어 모은 연개소문에 대한 비난의 소리였던 셈이다.
임신의 난은 치열한 ‘무쇠터 찾기’ 싸움이기도 했다.



<이영희, 포스코 인재개발원 교수·작가, 2008년 09월 0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