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샘터/붓가는대로 essay

들꽃처럼 살고 싶다

慈光/이기영 2005. 3. 22. 17:02

 

오늘 우울하다.
만사가 귀찮아 진다.
이것이 봄을 타는 것인지....
아니면 매년 겪는 것인지....
지나간 해들은 어떻게 지내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행복의 첫째 조건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일을 하면서도 무료해 진다.
한가하면 이런 생각이 난다는데 결코 지금 상황은 무료하거나 한가하지는 않은 실정이다.
오히려 요즘의 일상을 볼라치면 '눈코 뜰새가 없다'는 말이 절로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허함이 몰려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여유롭지만은 않은 점심시간이라 요즘은 들꽃을 살필 시간이 별로 없다.
오가는 시간 10분 제외하면 점심시간은 그저 식사후 양치하기가 바쁘다.
그런데도 오늘은 일부러 길가에서 쭈그리고 앉아 유심히 바닥을 들여다 보았다.
하기사 몇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호사스런 생각조차도 할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음에야.

봄은 겨우내 움츠렸던 싹들이 돋아나는 계절이다.
개머리처럼 단단하게 얼고 굳어버린 땅속에서
추위에 떨면서 겨울잠을 자다가
신기하게 얼굴을 내미는 작은 새싹들을 보면
정말 질긴 생명력을 느낄 수가 있다.
 


꽃다지---
그 작고 귀여운 아이를 만난 것이다.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이름도 이제사 알았다.
그러고 보니 새롭고 이쁘게 보였다.
너무너무 순수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화원에서 자라는 꽃들과는 달리 들풀이라 꾸미지 않았으므로 청초하게 보였다.

그런데 말이다.
들꽃과는 달리 사람 살아가는 인생사로 인하여 힘들고 우울하게 한다.
대낮부터 말이다.
'뭐가 이리 복잡하노?'
가까이 있는 사람들 - 특히 친구나 가족, 형제, 동료들로 인한 경우에 말이다.
그냥 들꽃처럼 때되면 자연스럽게 움트고 자라다가 씨앗을 퍼트리고
조용하게 스러지면 되는 것을...
그러면 어떤 이는 '혼자 산에 들어가서 움막짓고 살아라'한다.
정말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
 

들꽃과 같은 삶을 살고 싶다.
세파에 부딪히며 살지만 누가 보든 보지 않든 꿋꿋하게 살아나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그런 들꽃처럼 말이다.
그저 제 할일 하면서 좋은 이와 사랑 나누면서
때로는 그리워하고 때로는 열정적으로 사랑을 하는 그런 들꽃처럼 말이다.

소주 생각이 난다.
굳이 애주가라서 아니라 이럴 땐 한잔의 술이 약이될 때도 있다.

지금껏 누려보지 못했던 일이지만
바로 얼마 전부터 들꽃을 만나 행복하다.

다시 태어난다면 한떨기 들꽃으로 나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서 어리고 갸냘픈 소녀의 손에 의해 살포시 꺾여서 들려가는 있이 있더라도 말이다.

'마음의샘터 > 붓가는대로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볕이 화사한  (0) 2005.04.19
거위 한마리  (0) 2005.03.31
미처 알지 못했던  (0) 2005.02.16
오늘처럼 씁쓸한 날에는  (0) 2005.01.28
잠수의 묘미  (0) 2005.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