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철강이야기/5제철상징초승달

46 무쇠 제조법 묘사한 제철 노래

慈光/이기영 2013. 7. 20. 16:28

 

 

이영희 교수의 고대철강사

 

<46> - 무쇠 제조법 묘사한 제철 노래

2009년 05월 28일

 

 

 

 

▶ 나무 자루에 낀 무쇠 도끼로
평양 낙랑지구에서 출토된 ‘사찌’ 중의 하나(사진 위).

57㎝ 길이의 쇠칼도 평양 낙랑지구에서 출토된 ‘사찌’의 종류.

 

일본 신가(神歌)

 

‘신가(神歌)’라 불리는 옛 노래가 일본에 있다.
별칭 오키나(翁·옹). 오키나는 노인을 뜻한다.


예부터 전해 내려온 탈춤으로, 노인과 총각 등이 등장해 노래를 곁들인 연극을 소개한다.
정월 초하루 텔레비전 등에서 빠뜨리지 않고 방영하는 레퍼토리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가사의 태반이 정체불명의 말로 엮여 있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고,
노래 가사의 뜻을 묻는 외국인 대하기가 민망하다며 일본인들은 속상해한다.


‘신가’로까지 받들어지고 있는 노래의 가사 내용을 알지 못하다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노래의 첫 구절을 소개한다.

 

“도우도우 타라리 타라리라
아가리 라라리도우
치리야 타라리 타라리라 타라리
아가리 라라리도우…”


 

익살스런 대사로 하회탈춤과 비슷


 

가무극 형식으로 엮여 있기 때문에 그 전문은 꽤 길다.
중세 이후의 일본어 문장과, 정체불명의 문장 두 가지가 뒤섞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도우도우 타라리’란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신가는 고대의 제철과 철기 제조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노래인 동시에,
만들어진 그 무쇠 제품을 갖고 싶어하는 이웃 지방 세력가를 따돌리는 내용의 탈춤이다
.

 

힘차고 구체적인 묘사와 익살스런 대사가 생생해
언뜻 우리나라의 하회탈춤을 떠올리게도 한다.
고대 한국어와 중세 이후의 일본어가 뒤섞인, 매우 기이한 노래라 할 수 있다.
위에서 소개한 첫 대목만 요즘의 우리말로 해독해 보자.

 

“두드려서 달구어,
칼붙이 갈면,

날이 생길 것이다.
망치 치게나,

 달구어 칼붙이 갈리라….”

 

떻 든  이 노 래는 보배와 같은 존재다.
고대의 제철법이 소상히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래에 의하면,
무쇠알인 사철(砂鐵)을 진흙 고로 속에서 사흘 낮밤 계속 달군다.
사흘 낮밤에 걸친 불때기가 끝나고 고로가 식으면,
진흙 고로를 깨뜨리고 그 안에서 녹아 엉긴 무쇠 덩이를 꺼낸다.

 

“오, 사예! 오, 사예!”

신가의 주인공인 노인은 이때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기쁨의 춤을 춘다.

 

“오, 무쇠다! 오, 무쇠다!”라는 뜻의 탄성이다.
‘사’는 ‘무쇠’의 신라말이다.

 

제22대 지증왕 때까지 신라는 사로국 또는 사라국이라 불렸다.
‘사로’ ‘사라’는 ‘무쇠나라’란 뜻이다.


 

행복과 철기를 뜻하는 ‘사치’

 

‘행복’을 나타내는 일본말 ‘사치(幸·さち)’가 신라말이었음을 아는 이는 아주 드물 것이다.

 

사’는 위에서 밝힌 대로 ‘무쇠’를 뜻하는 신라말.
‘치’는 ‘끼다’의 신라말 ‘찌다’의 ‘찌’를 가리킨다.
즉 ‘사치’는 행복을 나타내는 일본말인 동시에 신라말임을 알 수 있다.

 

‘사찌’, 즉 ‘사치’란 무쇠 날을 다른 물체에 낀 모든 철기의 통칭이었다.
화살촉을 비롯해 칼·창·도끼·망치·톱·끌·가래·삽·호미·낫 등 모든 무기와 제조도구,
농기구들은 무쇠날을 나무 자루에 끼워 만든 것이다.

 

철기는 영토를 넓히며 집을 짓는 데 쓰이고,
짐승·물고기 등의 수렵량을 늘리고, 농산물의 수확량도 높였다.

 

철기, 즉 사치야말로 만능의 복방망이요, 행복의 근원이었다.

 

‘무쇠 낌’이란 뜻의 우리 옛말 ‘사찌’ 또는 ‘사치’가
행복을 지칭하는 일본말로 둔갑한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던 셈이다.

 

이같이 우리 주변에선 이미 사라진 옛말이
일본 현대어 속에 생생히 살아남아 있다는 것은 정녕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수효 또한 엄청나게 많으니
‘우리 옛말을 통해 오늘날의 일본말을 배울 수 있다’는 희한한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다.

 

<이영희, 포스코 인재개발원 교수·작가, 2009년 05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