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 교수의 고대철강사
<44> - 신라 번영 뒤엔 무쇠 있었다
2009년 05월 14일
▶ 포항 운제산 오어사(吾魚寺) 대웅전 추녀의 화려한 단청.
오어사는 신라 진평왕(572~632) 때 지어졌다.
금장식의 경주 기와집들
전성기의 신라 서라벌,
즉 경주에는 17만 8,936호(戶)의 기와집이 즐비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 중 35채의 큰 저택이 금으로 장식한 ‘금입택(金入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유사>에는 실제로 35채가 금입택이라면서도 39채의 금입택 이름이 기록돼 있다.
이 중에는 ‘재매정택(財買井宅)’이란 이름의 김유신의 종갓집도 끼어 있다.
‘쇠드리댁’ 혹은 ‘금드리댁’이라고도 불린 이 금으로 휘감은 저택은
신라 전성기인 삼국통일(7세기 중엽) 이후 약 100년에 걸쳐 지어졌는데,
9세기 들어 금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하는 바람에 건축 금지령이 내려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왕권에 비길 만큼 권력이 막강했던 진골 귀족들의 금 사용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금입택만이 아니라,
금으로 휘감은 마차나, 순금 그릇·수저도 만들어 사용했다.
15세기의 일본에도 금입택이 한 채 있었다.
교토의 녹원사 안에 지어진 3층 누각으로,
기둥·벽·난간 등에 금박을 입힌 건조물이었다.
1950년 불에 타 없어진 것을 1955년 재건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이름은 금각사(金閣寺·긴카쿠지).
일본인들이 무척 자랑하고 있는 건조물이다.
39채나 됐다는 신라의 금입택 중 단 한 채라도 남아 있다면 경주의 좋은 관광거리가 될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
알천은 사금?사철의 주산지
<일본서기>의 주아이(仲哀·중애) 천황 대목에는
눈부신 보배가 많은 나라, 금·은·채색이 많은 나라인 신라를 부러워하는 글로 채워져 있다.
경주를 중심으로 신라 일대의 강과 산에서는 많은 양의 금과 은이 채취됐다.
특히 경주 북쪽의 강 ‘알천’에서는 사금과 사철이 놀랄 만큼 많이 나왔다.
그래서 군사들이 이 강을 지키기 위해 늘 파수를 섰고, 열병식도 자주 가졌다.
사금과 사철은 ‘알’이라 불렸다.
강물이나 강 모래 속에서 작은 알 형태로 수북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은광 밑에서는 납덩어리가 채취된다.
이 납을 가열하면, 그 가열법에 따라 여러 가지 색깔의 안료가 생겨난다.
빨갛게 달군 납을 공기에 접촉시키면 고운 물감이 생겨난다.
갑자기 식힌 것은 은빛 도는 연노랑 물감이 되고,
천천히 식힌 것은 빨간 계통의 금빛 물감이 된다.
이 물감을 들깨기름에 넣어 끓인 안료로 그리는 유화 기법은,
7세기 고구려에서 일본에 전해진 새 화법이었다 한다.
이같이 납을 가열해서 얻은 안료로 신라 화공들도 화려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절간 추녀에 색칠하는 단청(丹靑)이며
법당에 걸어 두는 탱화 등에 쓰이는 안료는 은을 뗀 나머지 광석 납으로 만든 물감이었다.
서라벌은 동서남북 사방이 명산으로 에워싸인 대도읍이었다.
동쪽에는 명활산이 있고, 명활산성이 철통같이 도읍을 지키고 있었다.
화려한 빛깔이 수놓은 나라
서쪽에 있는 산은 서형산이다.
산성은 여기에도 이어져 있었다.
서형산은 무쇠의 산이었다.
남쪽에는 길게 남산이 펼쳐졌다.
북쪽에는 금강산이 있다.
신라인들에 의해 신령스럽게 받들어져 온 산이다.
서라벌은 바둑판과 같은 기획도시였다.
대도읍의 남북에 걸쳐, 넓이 23m의 한길이 깔려 있었다.
한길의 끝에서 끝까지 비를 맞지 않고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집집의 기와지붕 추녀가 길게 길을 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국통일이 가져다준 대번영 덕이었다.
<일본서기>는 이 번영의 모습을 다음과 같은 한마디로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눈부신 금·은·빛깔이 풍성한 나라.
그 나라 이름은 ‘다쿠부스마(たくぶすま)’ 신라국!”
‘다쿠부스마’란 일본 학자들에 의하면
‘닥나무 껍질을 두드려 만든 하얀 천 이불’이라지만,
실은 ‘불로 달군 무쇠터’란 의미다.
신라국 번영의 저변에 무쇠가 있었음을 강력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영희, 포스코 인재개발원 교수·작가, 2009년 05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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