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 교수의 고대철강사
<28> 한·일 고대왕조의 진상 - 철강 기술 교류를 중심으로
일본의 만엽집은 ‘노래에 담은 역사’
▶ 일본 <만엽집> 제1권과 제2권.
한자로 쓰여 있지만 한시(漢詩)는 아니다.
우리 옛말로 읊어진 이두체(吏讀體) 노래다.
일본서 가장 오래된 고대가요 모은 책
우리 옛말 이두체로 읊어져
<만엽집(萬葉集)>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 묶음이다.
전 20권, 4516수.
주로 7세기 중반에서 8세기 중반에 걸쳐 약 100년 동안 읊어진 노래들이다.
위로는 천황을 비롯해 왕족·고관,
아래로는 무명의 민중에 의해 읊어진 노래도 많고 거지의 노래까지 있다.
사랑의 노래도 있지만, 정치적인 비판의 노래가 태반이다.
쿠데타 모의의 노래도 있다.
특이한 건 우리의 옛말로 엮어진 노래집이라는 점이다.
당시 문자라고는 한자밖에 없었으니,
비판적인 모의 내용이 들통나지 않게 하려면 이두체(吏讀體)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두체란 한자의 음독과 훈독에서 나는 소리를 폭넓게 활용, 우리말을 나타낸 독창적인 표기법이다.
예를 들어 ‘분깃’이란 말을 보자.
‘분깃’이란 나누어 받는 한 몫을 가리키는 낱말인데,
이 순우리말을 이두체로 나타낼 때 ‘分衿’이란 한자로 표기한다.
‘分’은 ‘분’의 음독 표기요, ‘衿’은 ‘깃’의 훈독 표기다.
‘더욱’의 이두체 표기는 ‘加于’, ‘비록’은 ‘必于’라 표기했다.
글자가 오로지 한자만 존재했을 때, 우리 조상이 고안해 낸 희한한 대용(代用) 글발이었다.
역사의 왜곡 바로잡는 문학서
고대의 일본에는 신라·백제·고구려의 삼국에서 엘리트들이 몰려와
각자 자기 지역의 방언과 이두방식으로 우리말 노래를 불렀다.
이것이 <만엽집>이다.
특히 정권 다툼이나 체제 비판 노래의 경우,
일부러 암호화해 더블미닝의 노래를 읊고 있어 그 난해성(難解性)은 한층 더하다.
어떻든 당시의 일본에 유통되어 있던 한자의 음(音)·훈(訓)은
현재와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하지 않기 바란다.
왕인(王仁) 박사의 <천자문(千字文)>을 통해 한자가 일본에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5세기 초의 일이다.
<만엽집>이 집중적으로 읊어진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초까지의 시간차는 250년 내지 300년.
그간 한국식(특히 백제식) 한자의 음·훈은 상당히 일본화되어 있었다.
지금의 감각으로 말하자면
현재의 일본식 음·훈과 한국식 음·훈을 뒤섞은 것과 같은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 차자문(借字文)인 이두표기의 기술을 도입,
보다 간명하게 당시의 언어를 표기하려 한 것이,
‘만요가나(萬葉假名·만엽가명)’로 알려져 있는 ‘일본식 이두’다.
이 불가사의한 차자법(借字法)을 부정하는 한,
1200년 전에 쓰인 고문헌을 판독하는 일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훈독법(訓讀法)을 따라 <만엽집>을 읽으면 역사가 선명히 보인다.
특히 고대 한국의 각 세력이 서로 얽혀 패권 다툼을 펼치던 그 시대의 진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만엽집>은 문학서일 뿐만 아니라 역사서다.
<일본서기(日本書紀)> <고사기(古事記)> <풍토기(風土記)> <속일본기(續日本紀)> 등
일본 역사서의 왜곡부분을 시정해 주는 소중한 증거문서이기도 하다.
제1권 ‘잡가’는 권력 투쟁 담겨
<만엽집>은 ‘잡가(歌)’에서 시작한다.
20권 중 제1권은 몽땅 잡가다. 잡가란 무엇일까.
‘잡가’는 잡다한 노래로 치부되기 쉽다.
4516수나 되는 숱한 <만엽집> 노래 중 제1권에 수록돼 있는 작품은 84점.
모두가 잡가다.
본노래가 아닌 잡다한 노래가 ‘잡가’라면, <만엽집>은 왜 잡다한 노래로 제1권을 채웠을까.
잡다한 노래가 왜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것일까.
제1권만이 아니다.
다른 책에도 잡가는 수두룩하게 수록돼 있다.
<만엽집>에서 일컫는 잡가는, ‘잡다한 노래’가 아님을 여기서 알 수 있다.
한자의 뜻 그대로 ‘잡다(多)한 노래’를 ‘잡가’라 한다면, 책의 맨 뒷부분에 편집하는 것이 상식이다.
<만엽집>의 잡가는 잡다한 노래가 아니다.
한자의 ‘잡(雜)’자를 ‘잡스럽다’는 뜻으로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권을 잡는다’, ‘권력을 잡는다’ 등의 뜻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집권集權의 노래’인 것이다.
따라서 잡가를 해독하면 갖가지 권력 투쟁의 양상이 수두룩하게 떠오른다.
<만엽집> 1권은,
7세기 일본 정계의, 권력 투쟁의 양상을 역력히 담고 있다.
그러면 <만엽집> 제1권 첫 노래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말할 나위 없이 덴무천황(天武天皇)이다.
노래 첫머리에, 덴무천황임을 암시하는 이름이 명기되어 있다.
즉 ‘오호하츠세와가타케(大泊瀨稚武)’다.
천황이 되기 전의 덴무는 ‘대해인(大海人)’이라 불렸고,
고구려 대재상이었을 때 이름은 ‘무(武)’였다.
‘하츠세(初瀨·泊瀨)는 사철(砂鐵)을 풍성하게 건진 무쇠터 이름이었고,
덴무는 이곳에서 즉위했다.
<만엽집> 제1권 제1번은,
아스카(明日香) 근처의 풍성한 무쇠터에서 즉위를 선포하는 노래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노래는 나물 캐는 아가씨에게 이름을 묻는,
터무니없는 프러포즈의 노래로 지금껏 알려져 왔다.
<이영희,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작가, 2009년 0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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