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철강이야기/3일본의무쇠사나이

30 일본에 철기 제조술 전파한 ‘원술’

慈光/이기영 2013. 7. 20. 16:12

 

 

이영희 교수의 고대철강사

<30> 일본에 철기 제조술 전파한 ‘원술’

 

김유신의 아들 원술랑 ①

당나라 군대와 수차례 싸워 매번 이긴 신라의 장군 김유신은
아내 지소 부인(무열왕의 셋째 딸)과의 사이에 다섯 아들을 두었다.

맏아들은 삼광이요,

둘째는 원술,

셋째는 원정,

넷째는 장이,

다섯째는 원망이다.

 

삼광은 일찌감치 불도를 닦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도행이라는 이름의 스님이 되었고,
법해사 등 유명한 절을 지었다.

법해사는 일본 나고야시에 지금껏 남아 있다. 일본명은 ‘호카이지’.

 

원술은 신라의 용감한 화랑이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대목에 소상히 적혀 있다.

원술은 당나라와의 전투에 부장군으로 참전했다.
이 전쟁에서 신라군은 크게 패했고 장군은 전사했다.

부장군인 원술도 말을 몰고 적진으로 들어가 전사하려 했으나
보좌관이 말재갈을 잡고 놓지 않는 바람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간신히 목숨을 건져 서라벌로 되돌아온 원술을 보고
아버지 김유신은 크게 노하여 문무대왕에게 이렇게 청했다.


“원술은 왕명을 욕되게 했을 뿐 아니라,

‘싸움터에서는 결코 후퇴하지 않는다’는
가훈을 저버렸으니 목을 베야겠습니다.”

그러나 문무대왕은 “원술은 부장군이었기 때문에
장군이 전사한 다음 군사를 통솔할 책임이 있어 뜻대로 죽지 못했을 것이오”라고 말하며
승낙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유신은 끝내 원술을 용서하지 않았다.

원술은 한탄한 나머지 태백산으로 들어가 살았다.
그 후 문무왕 15년(675년)에 당나라가 다시 쳐들어왔을 때 맞서 싸워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김유신은 이때도 원술을 용서하지 않았다.
결국 원술은 부모의 용서를 얻지 못한 것을 한탄,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지냈다.

 

태백산에 들어가 무쇠를 만들다

 

태백산은 무쇠의 산지였다.
원술이 태백산에 들어가 살았다는 것은 곧 철기를 생산하며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무왕 15년인 675년에 세운 전공도 무쇠 무기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문무왕과 원술은 사촌 간이다.


681년 7월, 일본에 망명한 문무왕은 당시의 일본 천황이요,
아버지인 덴무(天武)와 상의해 원술을 일본으로 불러들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철기 제조술이 크게 평가받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원술은 ‘나가(長)’라는 이름의 황자(皇子)로 덴무천황의 호적에 입적되었고,
사기(佐紀)궁에서 살았다.


‘나가’란 신라에서 나갔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요,
‘사기’의 ‘사’는 무쇠를 뜻하는 신라말, ‘기’는 성(城)을 가리키는 우리의 옛말이다.

덴무 10년(681년) 9월 20일자의 <일본서기>에는
신라 사신 김충평 일행이 일본에 왔음을 알리고 있다.


금·은·구리·무쇠·비단·사슴가죽·깃발 등 많은 선물과 함께 일본에 당도한 일행 중
원술과 야장(冶匠)이 포함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신라 문무대왕과 일본 몬무천황

 

모두 20권인 일본 고대 노래책 <만엽집>의 제1권은 나가황자의 노래로 마무리지어져 있다.

덴무천황의 아들인 시키(志貴)황자와의 연회 중에 읊은 노래인데,
손자 다카야스(高安)의 박탈당한 위계를 바로잡아 달라는 부탁의 내용이다.
시키황자는 덴무천황의 맏아들이다.

다카야스는 나가황자의 친손자가 아닌 양손자다.
신라 문무대왕은 일본에 망명한 후 일본 몬무천황으로 등극했다.
몬무천황은 일본에서 만난 여인 미치요(三千代)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을 양손자로 맞았던 것이다.

이같이 복잡한 인간관계가 이룩된 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었다.
그 사연을 순서대로 적어 보자.

 

① 신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당나라는 여러 차례 군대를 보내 공격했으나 신라는 지지 않았다.
② 전쟁으로는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하자,
     당나라는 신라 조정 안에 친당 조직을 만들어 집안 싸움을 하게 만든다.
③ 조정 중신 중에 당나라 패가 생겨, 문무대왕을 암살하려는 모의가 진행된다.
    이를 알게 된 문무대왕은 이 모의를 역으로 이용, 자신은 죽은 것으로 하고,
④ 아들 신문왕을 즉각 즉위시킨다.
    시신이 없는 관을 궁 뜨락에서 불태우고 그 재를 대왕암 바위 위에 뿌려 장사를 지낸다.
⑤ 아들 신문왕이 즉위하는 것을 확인한 다음,
    자신은 감포 앞바다에서 몰래 배를 타고 일본으로 망명한다.
⑥ 제31대 신라왕으로 즉위한 신문왕은 즉각 군사를 모아 쿠데타 모의자를 토벌한다.

 

당시의 일본 천황은 덴무. 문무대왕의 생부다.
지난 날의 고구려 장군이요,

재상이었던 연개소문이 막강한 권부의 자리에 있었지만,
열 명이나 되는 그의 아들들이 차기 정권을 노려,

신라에서 온 아들 문무대왕을 강력히 견제한다.

 

이 같은 경우에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권력을 조용히 신장하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여성’이다.
재력이나 정치력이 있는 여성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는 것이다.
삼국을 통일한 영웅, 활쏘기의 명수 문무대왕도 낯선 땅에서는 이 비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문무의 여성행각은 이래서 시작된다.

 

 

<이영희,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작가,2009년 02월 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