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철강이야기/3일본의무쇠사나이

27 일본 산악지역 제철문화 수정귀회

慈光/이기영 2013. 7. 20. 16:06

 

 

이영희 교수의 고대철강사

<27> 한·일 고대왕조의 진상 - 철강 기술 교류를 중심으로

 

일본 산악지역 제철문화 ‘수정귀회’

 

규슈 구니사키 마을의 정초 행사

 

 

 

▶ 포스코 인재개발원 안마당에 있는 대장장이 동상.

머리에 상투를 틀고 있다.

 

 

‘라이셔 하요’는 ‘칼날 고쳐요’ 옛말

 

“오니 하요! 라이셔 하요!(オニハヨ! ライショハヨ!)”

일본 규슈(九州) 오이타(大分)현 동쪽 구니사키(東) 반도 산골의 정초.
갑자기 큰 외침소리가 인다.
그런데 이 외침의 뜻을 아는 일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외치는 사람 스스로도 뜻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일본땅에서 일본 사람이 외치는 소리의 뜻을 일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다니!
일본에는 이같이 희한한 일들이 가끔 일어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말은 고대 한국말이기 때문이다.


고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말이,

정초의 행사와 함께 고스란히 남아 지금껏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럼 말풀이를 해 보자.

 

수정귀회는 대대적 농기구 수선행사

우선 ‘오니(鬼)’의 어원을 살펴보자.
우리는 손위 자매를 ‘언니’라 부른다.
그런데 옛날에는 남자 형제의 형도 ‘언니’라 불렀다.
언니란 ‘큰 사람’을 통틀어 가리키는 낱말이었기 때문이다.

무쇠 덩어리를 불에 달궈 두드려서 칼붙이를 만드는 기술자를 고대에는 ‘두두리’라 했다.
두두리는 몸집이 아주 크고 힘이 셌기 때문에 ‘큰 사람’이라는 뜻으로 ‘언니’라고도 불렸다.
그런데 이 ‘언니’가 일본에 가서 ‘오니’란 말로 바뀐다.
게다가 한자 ‘귀(鬼)’자로 표기된 탓에 ‘오니(鬼·おに)’라 하면 무서운 괴물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하요’는 ‘해요’라는 뜻의 우리 옛말이다.
따라서 ‘오니 하요!’는 ‘오니가 합니다!’를 뜻한다.

‘라이셔’의 ‘라’는 ‘날’ ‘칼날’을 가리킨다.
‘이셔’는 ‘고치다’ ‘낫우다’의 뜻.
따라서 ‘라이셔 하요’는 ‘칼날 고쳐요!’의 옛말인 셈이다.

규슈 오이타현 구니사키 마을의 암호사(岩戶寺)에서는
홀수 해의 정월 7일 ‘수정귀회(修正鬼)’라는 독특한 모임이 열린다.
대대적인 농기구 수리 행사다.
짝수 해엔 정월 5일 성불사(成佛寺)라는 절에서 개최된다.

주인공은 세 오니(鬼), 즉 도깨비들이다.
이날 도깨비들은 냇물로 목욕한 마을 장정의 등에 업혀 절에 나타난다.
대단한 환대다.
도깨비들은 세 패로 갈려 마을로 내려가 각각 민가를 방문,
술이랑 푸짐한 안주를 대접받고 되돌아간다는데….
“오니 하요! 라이셔 하요!”는 마을로 내려가며 외치는 소리다.

가래·쟁기·괭이·낫·도끼·따비 등의 농기구는 모두 칼붙이다.
따라서 오니는 유능한 대장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수정귀회’는 ‘농기구 수선회’인 것이다.
보릿고개가 시작되면 대장장이는 떡·콩 등 식량을 얻어 갔을 것이다.
오이타 일대에 있던 고대제철·단야(鍛冶)집단과 마을 사람들의 연계가 눈에 선명히 보이는 듯하다.

▶ 한국 도깨비의 외뿔은 상투를 상징.

도깨비 외뿔은 상투를 상징

흥미로운 것은 이 구니사키 반도 일대의 오니가 행사 때 쓰는 귀면(鬼面)이다.
일본 각지의 오니가 쓰는 면은 모두 뿔이 두 개 달렸는데,
구니사키 반도의 귀면만은 외뿔이다.
한국 도깨비와 같은 것이다.

한국 도깨비의 이 외뿔은 상투를 상징한다.
구니사키 반도 일대에 고대 한국인 제철집단이 몰려왔음을 일러 주는 것인가.
반도의 중앙부는 무쇠의 산지였고,
여기서부터 28개의 골짜기로 나뉘어 여섯 고을을 형성하고 있다.
교통이 불편한 산악지형이 구니사키 특유의 제철문화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 인재개발원 교수·작가, 2009년 01월 0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