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철강이야기/3일본의무쇠사나이

26 12월 일컫는 시와스는 무쇠 부수는 달

慈光/이기영 2013. 7. 20. 16:04

 

 

 

이영희 교수의 고대철강사

<26> 한·일 고대왕조의 진상 - 철강 기술 교류를 중심으로

 

12월 일컫는 ‘시와스<しわす>’는 ‘무쇠 부수는 달’

 

일본 12달에 붙여진 이명(異名)

 

 

 

1월, 2월, 3월…. 숫자로 부르는 달 이름 외에,

한자로 불리는 이명(異名)이 일본에 있다.
1월은 무츠키(睦月·むつき),

2월은 기사라기(如月·きさらぎ),

3월은 야요이(生·やよい)… 하는 식이다.

 

지금은 12월. 십이월의 이명은 ‘시와스(師走·しわす)’.

옛 소리로는 ‘시바스’다.

12월을 왜 시와스라 부르는 것일까.

한자의 뜻에 따르면 ‘스승이 달리는 달’이란 의미로 풀이된다.

 

무쇠 역사와 관련된 숨겨진 의미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은 대단히 바쁘다.
때문에 위엄 있는 스승(스님도 가리킴)조차도 달리는 달이라 하여
이 같은 낱말이 생겼다고 일본인들은 믿고 있다.

억지 해석이다.


달의 이명은 한자의 뜻대로 풀이하면 안 된다.
한자 발음에서 빚어지는 소리를 따라 해독해야 하는 것이다.
즉 ‘시와스’의 옛 소리 ‘시바스’가 뜻하는 바를 캐내야 한다.

‘시’는 무쇠의 옛말이다.

 ‘쉬’ ‘사’ ‘사이’ ‘세’ ‘소’ ‘수’ ‘수에’…
모두 무쇠의 옛 소리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부름새가 조금씩 달랐던 것이다.

 

‘와스’,
즉 ‘바스’는 ‘부수다’의 ‘부스’에 해당하는 말로 ‘부스러뜨리다’를 뜻한다.


시(무쇠) 브스(부스러뜨림),
12월은 무쇠 부스러뜨리는 달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년의 맨 마지막 달인 섣달이 하필이면 무쇠 부수는 달이라니?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긴 무쇠의 역사가 얽혀 있다.

고대의 권력자들은 무쇠를 철저히 장악하고 있었다.


강변 모래펄에서 사철(砂鐵)을 캐는 일,
산언덕에서 철광석을 채굴하는 일,
무쇠 원자재를 불로 녹여 선철이나 강철을 만드는 일,
철로 농기구·수렵도구·무기 등을 만드는 일까지 두루 장악하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만들어 낸 농기구나 수렵도구들을 두루 백성들에게 나눠 주고 생산활동도 하게 했다.
이른 봄에,
이들 무쇠 도구를 받은 백성들은 늦가을까지 열심히 일하고
가을걷이가 모두 끝나는 음력 11월, 빌린 무쇠 도구를 반환하게 된다.
물론 생산품도 함께 바친다.

 

 

▶ ‘가시마입신영도(鹿島立神影圖)’.
가시마신(鹿島神)과 가토리신(香取神)이 사슴을 타고
나라(奈良) 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로 입성하는 그림. 15세기경 제작.

 

 

연초에 새 철기 배급받고 11월에 반환

 

그래서 11월의 이명은 ‘시모츠키( 霜月·しもつき)’다.
시(무쇠)를 모으는(도로 거둬들이는) 달이라 하여
‘시모’라 불리는 서리 상(霜)자와 달 월(月)자를 합쳐 이같이 불렀다.

이른 봄에서 늦가을까지 내내 쓴 낡은 도구는
모두 거둬들여 부순 다음 새 도구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11월은 낡은 철기(鐵器)를 모으는 달이라 하여 ‘시(무쇠)모(모음)’라 불렀고,
12월은 그 모아진 철기를 깨부숴 새 기구로 재탄생하는 달이라 해서
‘시(鐵) 바스(깨뜨림)’라 불렀던 것이다.

 

새 철기는 1~2월 사이에 만들어지고 2월 말경 다시 배급되었다.
이 작업을 관장하던 곳이 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かすがたいしゃ).
고대의 제철 명문 후지하라 가마타리(藤原鎌足)의 후예들이 주관했다.

 

8세기 일본의 수도였던 나라 가스가산(春日山) 기슭에 있었다.
현재는 화려한 신당으로 변신,
해마다 12월 15일에서 18일까지 성대한 제사가 치러진다.

 

흰 사슴 타고 내려온 두 제철신

 

이 신당에 모셔진 네 신을 통틀어 가스가명신(春日明神)이라 부른다.
‘명신’은 제철신을 뜻한다.
이 중 두 신은 원래 간토(·かんとう)지방에 있는
가시마신궁(鹿島神宮)과 가토리신궁(香取神宮)에 있는 신이었는데,
후지하라씨의 후손이 후대에 나라(奈良)의 가스가타이샤로 모셔 와 버린 것이다.

가시마신궁과 가토리신궁은 덴무천황이 일으킨 임신(壬申)의 난 당시,
무쇠 무기를 대량으로 만들어 숱한 군사와 함께 쿠데타 현장에 보낸 신궁들이다.


막강한 무기로 무장한 이들 신궁 병력은 덴무천황에게 큰 승리를 안겨주었다.
이 승리의 신이 몽땅 나라 고장으로 이동해 온 것이다.

제철의 두 신(神)은 하얀 사슴을 타고 입성했다.
사슴의 일본말은 ‘시카(鹿)’다.


시카는 우리말 ‘시(무쇠)가(철기를 만듦)’와 상통한다.

일본을 지배했던 우리 고대인들이 철기를 만들고 다룰 줄 알았던
기술인·지식인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영희, 포스코 인재개발원 교수·작가, 2008년 1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