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철강이야기/4원술과제철무녀

31 원술은 ‘제철 무녀<巫女>’와 함께 일본으로

慈光/이기영 2013. 7. 20. 16:13

 

 

 

이영희 교수의 고대철강사

 

<31> 원술은 ‘제철 무녀<巫女>’와 함께 일본으로

 



▶ 제철을 관장하는 여신인 ‘가나야고(金屋子)’는
제철공장의 높직한 언덕에 앉아 무쇠 불리기의 전 공정을 지켜본다.
옆에 있는 젊은 여인은 제철 무녀.

 

김유신의 아들 원술랑 ②

 

문무대왕이 일본에서 처음 관계를 맺은 여인은,

궁중의 상궁장(尙宮長) 자리에 있던 미치요.
그녀의 아버지는 수레를 만들어 왕궁에 납품하는 재산가였다.

미치요는 곧 임신을 하고 아들 다카야스를 낳는다.

문무대왕이 일본에서 얻은 최초의 아들 다카야스를 거둔 것은 원술랑이다.
문무대왕에게 진 신세를 갚기 위해서였다.


원술랑에게는 신라에서 데리고 온 야장 아들이 있었다.

일본식 이름은 가하치.
원술은 다카야스를 가하치의 양자, 즉 자신의 양손자로 삼고 제철 단야 기술과 관련 행정을 어려서부터 철저히 가르쳤다.
정권과 관계없이 살아 나가는 실팍한 기술인으로 키워 내고자 했던 것이다.

 

스님이 된 사랑의 씨앗

 

문무대왕은 덴무천황의 왕비 지토와도 은밀한 사랑을 나누었다.

그래서 얻은 딸이 다키다.
어머니는 다르되 아버지가 같은 이 두 남매,
다키와 다카야스는 서로 남매인 줄 모른 채 사랑하게 됨으로써 비극이 빚어진다.


다키가 다카야스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자, 충격받은 지토왕비는 702년 급환으로 세상을 뜬다.
그녀의 나이 58세 때의 일이다.

한편 태어난 아들은 절에 보내져 스님으로 성장한다.


이 스님이, 8세기 때 여왕 고켄의 애인 도쿄다.

766년 ‘법왕’이 되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인물이다.
원술랑의 일본 이름은 ‘나가(長)황자’다.

신라에서 나가, 일본에서 제철과 철기 만들기로 문무대왕을 보필했다 하여,
‘나가(なが)’라 불리는 한자 ‘길 장(長)’자로 이름을 삼은 것이다.

신라에 있을 때 원술랑은 장수였다. 이 ‘장수 장(將)’자에도 ‘길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름 하나 짓는 데도 무척 신경을 쓴 흔적이 엿보인다.

이 나가황자가, 자신의 사키궁(佐紀宮)으로 시키황자(志貴皇子)를 불러

다카야스의 일을 잘 봐 달라고 당부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시키황자는 다카야스의 어머니인 다키의 남편이요,
덴무천황의 맏아들인 데다, 나가황자와 같은 대규모 제철 관련 공장을 가지고 있었다.

진흙 독에서 불린 무쇠를 쪼개어 철기를 만드는 전 과정을,
여신격의 여인과 무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제철, 단야 작업은 진행된다.

 

‘겐지 이야기’에도 나오는 원술랑

 

중세 때, 무라사키 시키부라는 여성이 쓴 장편소설 <겐지(源氏) 이야기>에도 원술랑,
즉 나가노미(長皇子)에 해당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여기서는 천황의 아들이 아니라 동생으로 나온다.

이름은 모모소노경(桃園卿). ‘모모’란 ‘복숭아 도(桃)’자로 표현되고 있으나 ‘모음’을 뜻한다.
‘소노’의 ‘소’는 무쇠의 옛말. ‘노’는 ‘들’의 옛말 ‘야(野)’를 가리킨다.

따라서 ‘모모소노’란 ‘무쇠 모으는 들판’을 뜻하는 낱말이다.

원술랑은 역시 무쇠 관련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원술랑=나가노미코(長皇子)=모모소노경(桃園卿)’의 등식이 성립된다.


모모소노경에는 ‘아사가호(朝顔)’라는 이름의 딸이 있고,

이 딸에게는 숙모가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딸 이름 아사가호의 ‘아사’에는 ‘최고의 무쇠’라는 뜻이 담겨 있다.

아사가호는 제철 관련 무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로 미루어 아사가호의 숙모는 제철 관련 제사를 관장한 가나야고(金屋子),
즉 신격 여인이었음을 또한 짐작케 한다.

 

무라사키 시키부는 <겐지 이야기> 속에 픽션을 애써 만들어 담지 않았다.
이름만은 실명이 아닐지라도 사실을 크게 왜곡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원술랑은 신라 태백산에서 나올 때,
제철 고사를 지내는 무녀 딸이랑 신격의 여인 가나야고 까지 동반했음을 알 수 있다.


<이영희,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작가,2009년 02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