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 교수의 고대철강사
<38> 한∙일 고대왕조의 진상 - 철강 기술 교류를 중심으로
2009년 04월 02일
제철 가업 이어가는 백제 왕족들
일본 속의 백제 마을 ①
일본땅에 ‘백제 마을'이 생겨 번성하고 있다.
규슈(九州) 미야자키켄(宮崎縣) 미사토마치(美鄕町)
난고쿠(南鄕區) 구다라노사토(百濟の里)가 그곳이다.
660년 백제 멸망 직후 왕족들이 망명해 살던 곳으로,
그 옛 유적지에 박물관이며 백제관 등이 새로 지어진 것이다.
‘구다라노사토’란 ‘백제 마을’을 뜻한다.
일찍이 이 고장으로 망명한 사람들은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친인척 정가왕과 그의 비(妃) 그리고 장남 복지왕,
차남 화지왕과 그 가솔들이었다.
그들은 규슈 남동부에 흐르는 오마루천(小丸川) 상류 미카도(神門) 마을과,
하류 히키(比木) 마을에 두 갈래로 나뉘어 살게 된다.
▶ 규슈(九州) 미야자키(宮崎)에 세워진 ‘서쪽의 정창원(正倉院)’.
상류인 미카도 쪽에는 아버지 정가왕과 둘째 아들 화지왕 일행이 정착했고,
강 하류 마을 히키에는 장남 복지왕과 어머니 일행이 살게 된다.
90㎞ 떨어진 곳에 가족이 따로따로 살아 집안의 멸종을 피하고자 했던 것이다.
미카도와 히키는 두 곳 모두 무쇠 고장이었다.
오마루천은 사철의 강이었던 것이다.
음력 12월에 무쇠 잔치
정가왕 일족은 무쇠를 만드는 제철 집안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일 년에 한 번,
음력 12월 14일에서 21일까지, 미카도에 있는 아버지 집 사당에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곤 한다.
이때가 되면 작은 아들네 식구는 히키 사당에 모시고 있는 신체를 받들고 미카도로 향한다.
그 ‘신의 몸’이라는 정체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언젠가 그 신체의 몸을 확인하려 한 사람의 눈이 뭉개졌다는 끔찍한 얘기가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작은아들네가 아버지 집에 도착하는 것은 18일.
잔치는 이날부터 21일까지 4일간 흥성스럽게 치러진다.
미카도와 히키 두 마을의 합동 연례 잔치가 베풀어지는 것이다.
이 잔치를 ‘시하스(師走) 마츠리(祭)’라 부른다.
‘시하스’란 12월을 가리키는 일본말로, ‘무쇠 부숨’을 뜻한 우리 옛말 ‘시바스’와 같은 뜻이다.
마을의 어른이나 관청 사람이 동네의 낡은 농기구나 칼붙이를 모아 부쉈다가,
새 물건으로 만들어 다시 나눠 주는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잔칫날이다.
이 잔치가 끝나면 미카도에 사는 아낙네들은 동구 밖까지 히키 사람들을 배웅하러 나선다.
이때 아낙네들은 솥뚜껑, 냄비, 주걱 등을 손에 손에 들고 흔들며 “사라바! 사라바!” 하며 외쳐댄다.
‘사라바’란, ‘살아서 다시 만나자’는 우리말 ‘살아 봐’다.
고국을 여의고 이국땅 일본서 살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이 같은 인사말로 ‘시하스마츠리’는 끝난다.
그러나 정가왕과 그의 두 아들은 결국 끈질긴 추격군에 의해 최후를 맞는다.
규슈 동부의 항구 미미츠(美美津)에서 미카도(神門)까지의 거리는 50㎞ 남짓.
이 같은 오지까지 군대를 이끌고 집요하게 추격한 장수는 대체 누구인가.
<일본서기>의 사이메이(齊明·제명) 천황 6년,
즉 서기 660년 정월 대목에는
‘고구려의 을상(乙相) 가수몬(賀取文) 등 100여 명이 츠크시(筑紫)에 묵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을상 가수몬’이란 ‘연개소문’을 가리키는 또 하나의 이름이다.
660년, 연개소문은 100여 명의 군사를 데리고 규슈 동남부의 미카도 및 히키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다음,
북규슈 츠크시로 가 한동안 묵은 사실을 알 수 있다.
박물관 세워 유물 보존
미카도진자(神門神社)는 보유하고 있는 많은 보물로 이름 높은 곳이다.
5세기에서 8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동경·철검·철과·토기 등 숱한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그 중 서화육화경(瑞花六花鏡)은 나라(奈良)의 정창원(正倉院) 보고(寶庫)의 것과 같은 형의 청동 거울로,
도다이지(東大寺) 대불전에서 나온 국보 동경과 똑같은 것이다.
당연히 이들 보물을 보관하는 박물관이 필요하다 해서,
나라의 정창원과 똑같은 건물이 백제 마을에 세워졌다.
이것이 ‘서쪽의 정창원’이라 불리는 유명한 건물이다.
나라에 있는 정창원은 ‘동쪽의 정창원’이라 흔히 불리기도 한다.
나라 정창원과 똑같은 건물이 백제 마을에 세워진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인 1996년의 일이다.
‘서쪽의 정창원’을 관람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최근에는 일 년에 한 번 펼쳐지는 시하스마츠리를 구경하러 오는 이도 많다.
불가사의한 것은 ‘서쪽의 정창원’이 완성된 1996년 바로 그해,
미카도진자 뒤뜰에서 매끄러운 온천물이 절로 솟아난 사실이다.
그것도 시하스마츠리 당일인 양력 2월 10일(음력 12월)이었다고 한다.
백제 마을은 온천 목욕을 하러 오는 사람들로 요즘 더욱 붐비고 있다.
<이영희, 포스코 인재개발원 교수·작가, 2009년 04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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