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철강이야기/5제철상징초승달

49 신라에 편입된 백제 제철단지

慈光/이기영 2013. 7. 20. 16:31

 

 

 

이영희 교수의 고대철강사

 

<49> - 신라에 편입된 백제 제철단지

2009년 06월 18일

 

 

 

김유신과 연개소문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의 장군 김유신은 충청북도 진천 태생이다.
그가 신라의 수도 서라벌에서 멀리 떨어진 진천에서 태어난 것은 부모의 연애 탓이다.

 

김유신의 증조부는 금관가야 시조 김수로왕의 12대 손이요,
마지막 임금이었던 제10대 구형왕이다.

 

<삼국사기>는 ‘신라 법흥왕 때인 532년,
금관가야의 임금 김구해가 왕비와 세 아들과 함께 나라의 보물을 다 가지고 신라에 항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수로왕이 나라를 세운 지 490년 만의 일이었다.
이들은 신라의 ‘진골 귀족’으로 편입되었으나,
‘신(新)김씨’라 불려 신라 왕족인 ‘경주 김씨’와는 엄연히 구별되어 살아야 했다.

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은 훗날 유신을 낳은 아내 만명 부인과 ‘길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다.


<삼국사기>는 이들의 관계를 ‘야합’이라 표현하고 있다.

만명이 어엿한 신라 왕족인 데 비해
서현은 신라에 투항한 ‘신김씨’에 지나지 않아 결혼할 처지가 못 된다고 여긴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잘 전하고 있다.

 

만명의 증조부는 신라 제22대 지증왕이었고,
할아버지는 제24대 진흥왕의 아버지 입종갈문왕(갈문왕은 임금과 매우 가까운 권속에 바치는 호칭)이었다.

 

지체 높은 공주급의 아가씨였던 만명이 어쩌다 길에서 만난 사내와 연애하게 된 것이다.

서현이 만노군(萬弩郡·요즘의 진천) 태수로 발령받고 만명과 함께 떠나려 하자,
그제서야 그들의 연애 사실을 알게 된 만명의 아버지는 딸을 집에 가두고
사람을 시켜 엄히 대문을 지키게 했다.

 

그런데 갑자기 벼락이 치는 바람에 그 집 대문을 지키던 사람이 놀라 쓰러지고,
만명은 그 틈을 타서 집을 빠져나와 서현과 함께 진천으로 가 버린 것이다.

 

 

백제 제철기술 뛰어나

 

진천은 초기 백제가 관장한 대규모 제철단지였다.

이 고장 석장리에서 3~4세기의 백제 제철로 유적이 비교적 분명한 상태로 출토됨으로써

고고학계를 흥분시킨 적이 있었다.

 

제련에서 단야까지 일련의 공정을 확인할 수 있었고,
제철로만 해도 커다란 장방형·원형·방형 등 크고 작은 여러 형태의 것이 발굴돼,
백제의 높은 제철기술이 입증되기도 했다.

원료로는 철광석과 사철이 두루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백제 제철단지는 고구려 장수왕의 수중에 들어가
고장 이름도 금물노군으로 바뀌었다.

 

‘금물노’란 ‘검은 들판’을 뜻하는 고구려 말이다.

고구려 관할 아래 있던 이 제철터는 484년에 이르러 신라 영토가 된다.


이름도 만노군으로 개칭했다가 다시 흑양군으로 고쳐지기도 했다.

흑양은‘검은 들판’이란 뜻이다.

이름 그대로 진천 흙은 검다.


철분이 섞인 탓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진천쌀이 맛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어느 지역이건 무쇠고장은 예부터 맛있는 쌀의 생산지로 유명했다.

 

김유신은 진천 상계리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태(胎)를 묻었다 하여 그의 집 뒷산 이름을 태령산(일명 길상산)이라 불렀다.

 

진천은 김유신하고만 관련이 있는 고장이 아니라 연개소문과도 연관이 있다.

 

지난 호에서 언급했듯이,
단재 신채호는 그의 저서 <조선상고사>에서
우리나라 중부지방에 전해 내려온 소설 <갓쉰동전>의
주인공 갓쉰동이 바로 연개소문이라 지적하고 있다.

 

갓쉰동, 즉 연개소문은 ‘연국혜’라는 재상이 쉰 살에 낳은 아들이었으나,

아이를 먼 곳에 버려 15년 동안 만나지 않아야 흉액을 면할 수 있다는

도사의 말을 들은 아버지에 의해 중부지방의 장자 유씨 집앞 강가에 버려진다.

 

 

그날 밤 유씨는 용이 강을 타고 올라가는 꿈을 꾼다.

이상하게 생각한 유씨가 새벽에 강가로 나가 보니

일곱 살쯤 돼 보이는 용모가 준수한 사내아이가 강변에 앉아 있어 집에 데려와 종으로 부린다.

 

 

검술 ? 병서 ? 천문 익힌 연개소문

 

하루는 갓쉰동이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하는데,

난데없이 아름다운 퉁소 소리가 들려왔다.

지게를 받쳐 놓고 그 소리를 찾아가 보니 한 노인이 앉아 퉁소를 불고 있다가 말했다.

 

“네가 갓쉰동이 아니냐. 네가 지금 배우지 않으면 장래에 어찌 큰일을 이룩하겠느냐”

고 얘기하며 학문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갓쉰동이 그 이야기에 취해 해 지는 것도 모르고 있는데, 노인이 석양을 가리키며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오너라” 하고 말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갓쉰동은

‘나무하러 왔다가 빈 지게 놔두고 하루 해를 보냈으니 주인에게 야단을 크게 맞겠구나’ 생각하며

서둘러 산을 내려오니 누가 해놓았는지 지게에는 나무가 가득 실려 있었다.

 

그 후 갓쉰동이 나무를 하러 산에 가면 노인은 어김없이 기다리고 있다가

검술·병서·천문·지리 등을 가르쳐 주었고,

공부를 마치고 산을 내려오면 지게에는 나무가 가득 실려 있어 그냥 지고 오기만 하면 됐다.

 

한편 연개소문은 다섯 개의 칼을 차고 다닌 검술의 명수였고,

병서·천문에 뛰어난 전문가였다.

 

<이영희, 포스코 인재개발원 교수·작가, 2009년 06월 18일